천 문 해 자
한국 天文解字學會









讀山海經

泛覽周王傳
流觀山海圖
俯仰終宇宙
不樂復何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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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는 동서 문명의 뿌리 . 인도-유럽어의 기원 산스크리트
Sanskrit Language Cognate Indo-European Languages

  34
작성자
작성일 2017-06-28 (수) 18:50
ㆍ조회: 7293  
IP: 218.xxx.8
카카오환단원류사 개강 안내













안녕하세요. ^^



환단원류사 저자 박 민우 입니다. 



3월 19일 서대문 독립공원 독립관에서 열었던 강연회는 잘 마쳤습니다.



환단원류사에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책을 한 번 구입하고 끝나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환단원류사를 강의 하는 것이 작가의 도리이자 본분으로 생각하고 제가 유투브나 오프라인 강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만 동영상 제작이나 직강 등은 생각보다 많은 경비와 어려움이 따르는 관계로 현실적으로 가장 쉽고 빠르고 경비 부담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여러분을 만날 수 있는 카카오톡 강의를 개강하기로 했습니다. 



아니! 벌써 개강 한 지 한달이 다 되어가는군요.  



그 동안 책을 구입하신 독자 여러분을 초대해서 꾸준히 강의를 해왔습니다. 현재 약 50명 정도가 꾸준히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한 달 정도 운영을 해보니 밤 늦은 시간이나 식사시간 지하철 이동중 등에 카톡 소리가 계속나는 바람에 당황하신 분도 있고 잠을 못 주무시는 분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알림음을 무음으로 설정하거나 아주 작은 소리로 변경하는 등 자구의 노력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소설환단원류사 '님금나무'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간혹 독자님께서 주는 질문에 답변도 하고 있습니다. 



어저깨 인천에 사시는 윤*기님께서 책을 주문하셨길래 카카오환단원류사 강의실로 초대도 했습니다.  



미디어와 네트워크의 발달로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만나고 인사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지 어언 20여년이 지났습니다만 그간 이런 현상도 진화하여 구형 인터넷 역사게시판에서 아고라, 페이스북, 트위트, 카카오톡 등으로 진화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현재 카카오환단원류사 강의를 듣고 계시는 연령층은 초기 게시판 시대 사람들로 주로 40대부터 50대에서 70대까지 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주 골고루 분포되어있는 상황인데 젊은 층이 너무 적습니다. 



어떤 독자분은 카카오환단원류사 때문에 더 젊어진 것 같기도 하고 잘 몰랐던 스마트폰 사용 방법도 알게 되었다고 하셨으며, 어떤 분은 집필 중인데 환단원류사를 읽고도 자기가 몰랐던 사실을 다시 알게 되었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며 평소에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는데 이제 스마트폰으로 간단하게 언제 어디서나 환단상고사를 읽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신 분도 있습니다.  



이에 관심있는 여러분의 많은 참여 신청바랍니다.    







카카오환단원류사 강연 전문 카톡을 운영중입니다. 일주일에 3회 2~3시간 카톡만으로 강의합니다. 



강의 신청은 010-2875-3808로 카톡 문자 하나만 보내시면 됩니다. 



'카카오환단원류사 참가신청'이라고 쓰시면 되고요. 간단한 프로필을 적어주시면 운영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예를 들어 '대전에사는 52세 누구입니다. 참가 신청합니다' 이렇게....



여러분의 많은 신청바랍니다. 











 





bc8937

 

 

 


 







5/15일 카카오환단원류사 













[bc8937] [오후 6:58] [FILE] Anita Choi - mama.mp3 (6.99MB)

[bc8937] [오후 7:03] 아니타최의 노래 마마 들으면서 카카오환단원류사 시작합니다

[bc8937] [오후 7:10] 본 페이지 게시판에 소설로 환단원류사 '님금나무'를 연재했는데 잘 볼 수있을까 싶어 한번 찾아봤더니 마지막회가 맨먼저 뜨는 군요 첨부터 보시려면 그립을 주욱 올려서 1편부터 보셔야합니다.   

[bc8937] [오후 7:11] 님금나무는 소설이지만 우리 환단역사를 이해하는데 아주 많은 도움을 주므로 꼭 읽으보세요

[bc8937] [오후 7:12] 휴대폰으로 바로 보실 수 있으니 아주 간편하답니다.^^ 

[bc8937] [오후 7:13] 사진

[bc8937] [오후 7:14]  * 소설 환단원류사 '님금나무'가 출간되었다. 본서는 '환단원류사'를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이야기로 쓴 책이다.



 주인공들의 대화 속에 부도지의 핵심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말의 어원이 산스크리트였다는 사실을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꾸몄다. 상고시대에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 이상으로 '물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환인 천제는 말한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며 모든 것에 평등하다. 군주가 먼저 자신을 낮추고 만백성이 물 같이 평등하도록 가르친다.



 "나라를 다스리려는 자는 먼저 물부터 잘 다스려야 한다." 



 천웅 . 환웅 .지소웅 세 님금은 홍수를 다스리면서 백성을 사랑하고 평등하게 잘 다스리는 법을 깨닫는다. 그들은 각각 3천의 무리를 이끌고 신 개척지를 향하여 나아간다. 



 환단원류사 제 2권에 속하는 이 책은 우리 환민족이 동방의 부상국과 서방의 수밀이국까지 진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흑피옥 종족의 동북방 진출 과정과 멸종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이어 홍산문화가 탄생하게 된 과정도 쉽게 알 수 있도록 그렸다. 환웅 배달환국시대 이전에 한반도는 누가 살았는지도 알 수 있게 했다. 모두 역사적 고찰과 기후학, 지질학, 고문자학, 산스크리트언어학, 수메르 점토판 해독 등을 참고하였으므로 비록 소설이지만 역사적으로 참고할 만하다. 

[bc8937] [오후 7:16] 사진

[bc8937] [오후 7:17]  서자(庶子) 신어(神於) 아이들( t24.jpgt47.jpgt23.jpgt36.jpg- t11.jpgt36.jpg. a^hai^-dri^)

[bc8937] [오후 7:18] 글자가 깨진 부분은 산스크리트입니다., 위에 이미지로 올렸으니 참고 바랍니다. 

[bc8937] [오후 7:19]  아해들 이 말이 산스크리트입니다.  영어로 a^hai^-dri^ 아이들 우리말과 발음도 같고 뜻도 같습니다. 

[bc8937] [오후 7:20]  서자(庶子)는 무슨 뜻일까요

[bc8937] [오후 7:20]  서자(庶子)는 첩의 자식입니까

[bc8937] [오후 7:22]  서자(庶子) 신어(神於) 아이들 이란 제목을 붙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bc8937] [오후 7:23]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서자(庶子)는 환웅 배달국시대에 실재했던 벼슬 관직명입니다. 

[bc8937] [오후 7:24] 환인시대 가 끝날 무렵 '서자지부'라는 관청이 있엇습니다. 

[bc8937] [오후 7:24] 소설 님금나무는 서자지부에서 시작합니다. 

[bc8937] [오후 7:26] 서자지부라는 관청은 주로 재난을 구재하고 황무지를 개척하고 선진 문명을 전파하는 파견사이자 개척자를 파견하고 관리하는 관청이었습니다.  

[bc8937] [오후 7:26] 그곳에 환웅이라는 최고 관리가 있었고요

[bc8937] [오후 7:28] 환웅은 천제울국에 식량이 줄어들고 인구가많아져서 동서로 기술자, 노동자, 건축가, 의료진 등으로 구성된 약 3천명가량의 무리를 파견하자고 환인천제에게 주청드립니다. 

[bc8937] [오후 7:29] 이 이야기도 님금나무에 소설화 되어 나옵니다

[bc8937] [오후 7:30] 그런데 ' 서자(庶子) 신어(神於) 아이들( t24.jpgt47.jpgt23.jpgt36.jpg- t11.jpgt36.jpg. a^hai^-dri^)'이라는 논설을 읽으보시면 아시겠지만 소설이 아니라 진짜란 말입니다. 

[bc8937] [오후 7:31] 태백일사 / 제3  신시본기 중에서 인용



 조대기(朝代記)에서 말한다.



 '때에 사람은 많고 산업은 궁핍하여 그 살아갈 방법이 없어 걱정이었다. 서자부(庶子之部)에 환웅(桓雄)이라는 대인(大人)이 있었는데 여러가지 사정을 살피더니 하늘에서 내려가 땅위에 하나의 광명세계(밝은 지혜로 다스려지는 세상)를 열려고 생각하였다. 때에 안파견(安巴堅 . 환인)이 두루 금악 삼위 태백을 살피더니 태백은 이로써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 한지라 환웅(桓雄)에게 명하여 가로대 "이제 사람과 물건의 업은 이루어진 듯 하다. 그대 수고를 아끼는 일 없을지니라. 무리를 이끌고 하늘에서 내려가 하계에 가서 하늘의 뜻을 펴 가르침을 베풀고 천신(天神)께 제사지내는 것을 주관하라. 어버이의 권위를 세워서 늙은이와 어린이를 보살펴서 모두 다 평화롭게 하라.가르침의 도를 세워서 재세이화하여 자손 만대의 큰 귀감이 되도록 할지어다" 하시며 마침내 천부인 세개를 주시고 그를 보내어 이들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桓雄)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의 신단의 나무 아래 내려오시니 이를 신불(神市)이라 한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데리고 농사를 주관하고, 삶을 주관하며, 형벌을 주관하고, 병을 주관하시고 선악을 주관하면서 무릇 인간의 360여사를 두루 주관하여, 세상에 계시며 이치대로 교화하여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셨다. 이를 환웅(桓雄)천왕(天王)이라 한다.





 [인용 끝]



[bc8937] [오후 7:32] 태백일사 조대기(朝代記)에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bc8937] [오후 7:32] 분명히 서자부(庶子之部)라고 기록했습니다. 

[bc8937] [오후 7:32] 그러니 관청 맞지요

[bc8937] [오후 7:33] 그리고 삼국유사에  [인용문]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제1〉



 古記云。昔有桓因(謂帝釋也)庶子桓雄。數意天下。貪求人世。父知子意。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乃授天符印三箇。遣往理之。雄率徒三千。降於太伯山頂(即太伯今妙香山)神壇樹下。謂之神市。是謂桓雄天王也。將風伯雨師雲師。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在世理化。



 《고기(古記)》에는 이렇게 말했다.“옛날 환인[제석을 말한다]의 서자 환웅이란 자가 있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아래로 삼위태백 땅을 내려다 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가서 그곳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바로 태백은 지금의 묘향산이다] 신단수 아래 내려와 이를 일러 신시라고 하였으니 그를 환웅천왕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 생명 ・ 질병 ・ 형벌 ・ 선악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에 있으면서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인용 끝]

[bc8937] [오후 7:34] 동방으로 삼천명 왔습니다. 

[bc8937] [오후 7:34] 이제 서방으로 삼천명 간거 올리겠습니다. 

[bc8937] [오후 7:35]   수메르(sumer) 문명은 동양인이 세운 것



  김정양 박사는 1996년에 '독일 베를린 . 브란덴브르그 학술원' 교수였으며, 신학박사 이시다. 그는 2010년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거대 강입자가속기(LHC)' 실험을 하는데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한 출판 문화 협회'에서 '천부경과 우주 입자 물리학'이라는 주제로 강연도 했다.

 그는 독일에서 유학할 때, 학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메르의 쐐기문자를 해독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때 일이 계기가 되어 독일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베를린 . 브란덴브르그 ..

[bc8937] [오후 7:37] 사진

[bc8937] [오후 7:37] 산스크리트 이미지 글자가 들어있어 그림으로 올립ㅂ니다. 

[bc8937] [오후 7:38] 사진

[bc8937] [오후 7:40] 지도 그림은 님금나무 첫페이지에 첨부되 있습니다. 그림안에 설명 다 붙어있습니다. 

[bc8937] [오후 7:47] 김정양박사님께서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왔을 때 대종교를 이끌고 계시던 故안호상박사님을 찾아가 이말을 했다고합니다. 지금도 대종교 홈페이지에서 이 글의 저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bc8937] [오후 7:48] 안호상박사님은 초대문교부 장관까지하신 분이시고 우리나라 상고사를 찾기위해 많은 노력과 공헌을 하신 분이십니다. 

[bc8937] [오후 7:48] 대종교에서 대학교수를 비롯하여 재야 사학자에게 거의 매일 강연회를 열고 우리 역사를 강연했습니다

[bc8937] [오후 7:49] 놀랍지 않나요

[bc8937] [오후 7:50] 김정양박사님은 그 후로도 대학 강연을 다니면서 똑같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bc8937] [오후 7:50] 우리 환민족이 수메르 문명을 개척했고 동방으로 삼천명 서방으로 삼천명 파견한거 맞잖아요

[bc8937] [오후 7:52] 왜! 서자(庶子) 신어(神於) 아이들( t24.jpgt47.jpgt23.jpgt36.jpg- t11.jpgt36.jpg. a^hai^-dri^)인지 그 논설문을 오립니다.

[bc8937] [오후 7:52] 이야기 환단원류사‘님금나무’는 서자(庶子)라는 두 글자를 공부하다 쓰게 되었다. 그리고 전편에서 소개한 김정양박사의 수메르 점토판 해독 연구(환단원류사 1권 392 쪽 수메르 문명은 동양인이 세운 것)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소설 님금나무를 환단원류사 2권에 합본하면 너무 두꺼워지므로 별책부록 단행본으로 먼저 펴냈다. 환단원류사 2권을 구매하시는 분께는 님금나무도 같이 보낼 것이다. 책 표지에‘청소년을 위한 역사 소설’이라고 크게 부제를 달았다. 그만큼 필자가 염원하는 바도 간절하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만 읽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 부도지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든 님금나무도 읽을 수 있게 어른들이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소설 님금나무는 군주가 되려면 물부터 잘 다스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군주 스스로 가장 낮은 곳에 임하여 정치를 한다. 물은 만물에 평등하며 道를 이룬 생명체이다. 고대에는 홍수를 이겨내는 것이 군주의 가장 큰 치덕이었다. 환웅은 홍수를 극복하고 천국에 평화를 찾기 위해 수원(水源)을 다스린다. 주인공들의 대화 속에 부도지의 핵심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말의 어원이 산스크리트였다는 사실을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했다. 이 책은 우리 환민족이 동방의 부상국과 서방의 수밀이국까지 진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흑피옥 종족의 동북방 진출 과정과 멸종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이어 홍산 문화가 탄생하게 된 과정도 쉽게 알 수 있도록 그렸다. 배달 환국시대 이전에 한반도는 누가 살았는지도 알 수 있게 했다. 모두 역사적 고찰과 기후학, 지질학, 고문자학, 산스크리트 언어학, 수메르 점토판 해독 등을 참고하였으므로 비록 소설이지만 역사적으로 참고할 만하다.



 

[bc8937] [오후 7:53] 

 



 



 



   서자(庶子) 신어(神於) 아이들( t24.jpgt47.jpgt23.jpgt36.jpg- t11.jpgt36.jpg. a^hai^-dri^)



 



 



  브라흐마(Brahma), 시바(Siva), 비슈누(Vishnu)는 힌두교의 神으로 우주를 창조한 삼신(三神)이다. 궁극적으로 이들은 환민족(桓民族)의 삼신(三神)과 같다. 힌두교의 위대한 神가운데서 가장 높은 삼위(三位) 神인데 교파에 따라 구분하여 최고 神으로 받들기도 하지만 현재는 삼위일체(三位一體)적 성격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짙다. 그 중에서 시바(Siva) 神은 가장 인기있는 神인데 그것은 재물과 행복을 가져다 주고 생산(生産)을 주관하는 실체로써 우주를 창조한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모든 생명과 업보(Karma) 등 물질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까지 모두 파괴하고 세상을 재창조한다. 이것을 윤회라하는데 윤회의 근본 원리는 60간지(幹支)와 같은 것으로 마고성에서 천문을 연구하던 학자들이 만든 것이다.(환단원류사 1권)   



 비슈누(Vishnu)는 생명의 神으로 그 이름은 생명의 에너지를 준다는 뜻이다. 시바(Siva)와 같이 세상을 창조 했지만 악(惡)을 소탕하고 세상이 끝날 때 까지 정의(正義)를 지키는 평화의 神이다. 그러나 눈만 뜨면 죄를 짓는 인간들에게 비슈누(Vishnu)는 달갑지 않은 神일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죄를 많이 지어서인지 우리나라에서 비슈누(Vishnu)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브라흐마(Brahma)와 시바(Siva)는 좀 다르다.

[bc8937] [오후 7:53] 브라흐마(Brahma)는 가장 위대한 神으로 손꼽지만 사실상 우주를 창조하는 데는 크게 활약한 것이 없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시바(Siva)와 비슈누(Vishnu)가 브라흐마(Brahma)보다 한 단계 낮은 神이라는 인식 때문에 사람들은 브라흐마(Brahma)에게 모든 업적을 돌린다. 그래서 神들의 아버지로서 브라흐마(Brahma)는 우주를 창조하고 파괴하는 최고 능력의 神으로 기억하고 있다. 환민족(桓民族)에게 브라흐마(Brahma)는 삼신(三神)할머니의 역활을 맡은 神으로 이해 된다. 사람이 태어날 때 숨을 불어 넣어주는 神이 브라흐마(Brahma)이기 때문이다. 우리말 실담어로는 불함(不咸)이라 한다.



 시바(Siva) 神은 재물과 행복과 자손의 번영을 주는 神이므로 당연히 인기가 있어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시바(Siva) 神을 찾는다. 아-씨바(a-Siva)라는 말을 알 것이다. 이것은 정통 우리말 실담어이다. 아(a)는 부정사이므로 '그렇지 아니하다', 'not'의 뜻이고 시바(Siva)는 시바(Siva) 神께서 복을 준다는 뜻인데, 아(a)를 붙였으므로 '재수 없어' , '시바(Siva) 神께서 복을 주지 않아' 그런 뜻이다.

[bc8937] [오후 7:53] 이와 관련하여 동국정운(東國正韻)에는, 솅(壻), 신증유합(新增類合)에는 셔(壻)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딸과 함께 합궁하는 사위(壻)를 뜻하는 말로 사위(壻)를 실담어로 풀면 t19.jpgt23.jpgt35.jpgt14.jpg, Saiva(사이바)이며 '시바 神이 보낸 사람', '神의 사자(使者)'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서방님'이란 말도 '사위(壻)서'와 관계 있는 뜻으로 하늘에 있는 시바(Siva) 神으로부터 내려온 신성(神聖)한 존재로 해석 된다.(출처 : 강상원)



 시바(Siva) 神은 남녀가 합궁하여 자손을 낳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보살펴주는 神의 역활을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시바(Siva)가 씹(十, 자궁, 태장)의 어원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말에 '아(兒) 서다.'라 하면 "여자가 남자와 합궁하여 아이를 수태하였다"는 뜻인데, 서다의 '서'는 시바(Siva) 神의 사자(使者)가 여자의 수태를 도와주는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는 모두 시바(Siva) 神께서 보낸 사자(使者)에게서 생명의 원기(原氣)를 받고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神의 아이들이다.  

[bc8937] [오후 7:53]  [인용문] 



 * 壻와 婿는 동의어



 1. t19.jpgt23.jpgt35.jpgt14.jpg, Saiva : 사회, 사위(壻), 시바 神이 보낸 사람, 神의 사자(使者), Son in law, related to the descendant of the god Siva, a new comer, Visitor derived from the got siva.



 2. t39.jpgt24.jpg-t13.jpgt24.jpgI_t1.jpgt11.jpg, ja^-ma^tr, 사위(壻), 자(子)-마뜰, Son is low



 註 : '서방님'이란 '사위(壻)서'와 관계있는 뜻으로 하늘에 있는 시바(Siva) 神으로부터 내려온 신성(神聖)한 존재로 해석 된다. 예컨대, 재수없다. 상서롭지 않다는 뜻으로 "아-씨바', 'a-siva'라 말하는데, 이는  시바(Siva) 神이 복을 주지 않았다는 뜻으로 표현한 우리의 고유한 토속 실담어이다.



 * a-Siva : 아-씨바, 아 씨발, 행복하지 않다. 재수없다. not happy, unauspicious, unfortunate, not locky, not proper.



 출처 : 한자는 동이족의 문자(강상원)

[bc8937] [오후 7:53] 그리고 국어사전에 서방(書房)이란 한자(漢字)표기는 잘못된 것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서방(書房)으로 표기하고 있다. "남편을 낮잡아 이르는 말, 혼인을 하여 여자의 짝이 된 남자를 그 여자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적고 있다. 앞에서 설명한 바 있지만 시바(Siva) 神으로부터 내려온 신성(神聖)한 자손을 이토록 홀대하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 국어에 현실이다. 서방의 올바른 표기는 사위(壻)서, 방(房)방으로 해야할 것이다. 이를 해석하면 실담어로 해석하면 '내 딸과 합방하는 남자'이다.



 그런데 같은 '솅'인데 눈여겨보아야 할 특별한 字가 있다. 바로 서자(庶子)할 때 서(庶)이다. 이것도 그 뜻으로 보면 아이가 선 것이고, 하늘에서 보낸 사자(使者)가 분명한데 단수가 아닌 복수를 뜻하는 무리서(여러 사람, 庶)字를 썼다. 왜 그럴까?

[bc8937] [오후 7:54] 국어사전에서 서자(庶子)의 뜻을 살펴보면 "양반과 양민 여성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한다. 사실 조선시대에는 그런 사례가 많이 있었으므로 그렇게 굳어진 것에 대해 항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원래 서자(庶子)의 본뜻은 그게 아니었을 것이다. 사위를 뜻하는 서(솅)자(字)를 두고 하필이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무리'의 뜻을 가진 漢字를 썼을까? 필자의 추측으로는 그 글자가 오래전부터 전해져온 역사책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으므로 함부로 바꿀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아마도 내가 썼다면 장모를 새로 보았으니 서자(壻子)로 썼을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단군왕검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데, 단군왕검의 아버지인 환웅(桓雄)은 환인의 서자(庶子)라고 하였다. 환웅(桓雄)의 올바른 뜻은 "백성을 밝은 지혜로 잘 다스리는 님금"이다. 환(桓)은 지혜가 밝음을 뜻하고 웅(雄)은 '훙'이며 실담어로 '잘 다스린다'는 뜻이다.(해석 : 강상원)



 

[bc8937] [오후 7:54]  [인용문]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제1〉



 古記云。昔有桓因(謂帝釋也)庶子桓雄。數意天下。貪求人世。父知子意。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乃授天符印三箇。遣往理之。雄率徒三千。降於太伯山頂(即太伯今妙香山)神壇樹下。謂之神市。是謂桓雄天王也。將風伯雨師雲師。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在世理化。



 《고기(古記)》에는 이렇게 말했다.“옛날 환인[제석을 말한다]의 서자 환웅이란 자가 있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아래로 삼위태백 땅을 내려다 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가서 그곳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바로 태백은 지금의 묘향산이다] 신단수 아래 내려와 이를 일러 신시라고 하였으니 그를 환웅천왕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 생명 ・ 질병 ・ 형벌 ・ 선악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에 있으면서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인용 끝]

[bc8937] [오후 7:54] 이제 서(庶) 자(子)를 제대로 해석을 해보자. 서(庶)는 '여럿이', '무리'의 뜻이지만 실담어로 해석할 때는 글자의 뜻과 연관된 본뜻을 찾으면 된다. 서자(庶子)일 때, 자(子)는 산스크리트로 '존칭'의 뜻이 있으므로, 서자(庶子)는 관직 명칭으로 볼 수 있다. 이름하여 서자(庶子)라 하면 파견사, 사신 처럼 왕께서 사명을 주어 여러 무리를 파견하는 신하 즉, 여러 무리로 구성된 왕(王)의 사자(使者)들인 것이다.



 이를 풀어서 쓰면, "옛날에 환인(桓因)께서 서자관(庶子官)의 우두머리에게 환웅(桓雄)이라는 최고 높은 벼슬을 내리고 3천의 서자(庶子)들과 함께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할 만한 땅으로 보내 신불(神市)을 개척하게 하였다." 이런 뜻이다.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할 만한 땅으로 3천의 무리를 파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해답이 조대기(朝代記)에 있었다.



 

[bc8937] [오후 7:54]  [太白逸史 / 第三   神市本紀 중에서 인용]



  朝代記曰時人多産乏憂其生道之無方也庶子之部有大人桓雄者探聽輿情期欲天降開一光明世界于地上時安巴堅遍視金岳三危太白而太白可以弘益人間乃命雄曰如今人物業已造完矣君勿惜勞苦率衆人躬自降往下界開天施敎主祭天神以立父權扶携平和歸一以立師道在世理化爲子孫萬世之洪範也乃授天符印三個遣往理之雄率徒三千初降于太白山神壇樹下謂之神市將風伯雨師雲師而主穀主命主刑主病主善惡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在世理化弘益人間是謂桓雄天王也

     



 태백일사 / 제3  신시본기 중에서 인용



 조대기(朝代記)에서 말한다.

[bc8937] [오후 7:54] '때에 사람은 많고 산업은 궁핍하여 그 살아갈 방법이 없어 걱정이었다. 서자부(庶子之部)에 환웅(桓雄)이라는 대인(大人)이 있었는데 여러가지 사정을 살피더니 하늘에서 내려가 땅위에 하나의 광명세계(밝은 지혜로 다스려지는 세상)를 열려고 생각하였다. 때에 안파견(安巴堅 . 환인)이 두루 금악 삼위 태백을 살피더니 태백은 이로써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 한지라 환웅(桓雄)에게 명하여 가로대 "이제 사람과 물건의 업은 이루어진 듯 하다. 그대 수고를 아끼는 일 없을지니라. 무리를 이끌고 하늘에서 내려가 하계에 가서 하늘의 뜻을 펴 가르침을 베풀고 천신(天神)께 제사지내는 것을 주관하라. 어버이의 권위를 세워서 늙은이와 어린이를 보살펴서 모두 다 평화롭게 하라.가르침의 도를 세워서 재세이화하여 자손 만대의 큰 귀감이 되도록 할지어다" 하시며 마침내 천부인 세개를 주시고 그를 보내어 이들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桓雄)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의 신단의 나무 아래 내려오시니 이를 신불(神市)이라 한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데리고 농사를 주관하고, 삶을 주관하며, 형벌을 주관하고, 병을 주관하시고 선악을 주관하면서 무릇 인간의 360여사를 두루 주관하여, 세상에 계시며 이치대로 교화하여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셨다. 이를 환웅(桓雄)천왕(天王)이라 한다.





 [인용 끝]

[bc8937] [오후 7:54]  아마도 조대기(朝代記)라는 책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듣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조대기(朝代記)가 어떤 책인가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조선왕조실록에서 그 종적이 잡혔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제공하는 조선왕조실록 번역본 '세조 7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5월 26일(무자) 3번째 기사'를 확인해 보니 조대기(朝代記)를 비롯한 16본의 서책들이 백성들이 읽으면 안되는 책으로 분류되어 거두어들이라는 명을 내렸다. 말이 16본이지 1백여 권(卷)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역사적 가치는 엄청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bc8937] [오후 7:55]  [인용문]



  세조 7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5월 26일(무자) 3번째기사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誌公記)》·《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안함 노, 원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도증기 지리성모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三人記錄)》, 《수찬기소(修撰企所)》의 1백여 권(卷)과 《동천록(動天錄)》·《마슬록(磨蝨錄)》·《통천록(通天錄)》·《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도선 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文書)는 마땅히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進上)하도록 허가하고, 자원(自願)하는 서책(書冊)을 가지고 회사(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寺社)에 널리 효유(曉諭)하라.” 하였다.



 [인용 끝]



 

[bc8937] [오후 7:55]  이런 훌륭하고 민족사적 가치가 풍부한 책들이 말살된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역사가 땅에 떨어져 고개도 못쳐들고 사대만 일삼는 한심한 국민이 된 것은 일본의 강제 침탈만 탓할 것이 못 된다. 소위 제왕이라는 자가 백성의 피와 살이 된 그 원천도 몰라보고 말살하려했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조선(朝鮮)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피하지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속편하다. 그게 무엇일까? 유교의 나라를 세운 탓일지도 모를 일이다. 유교의 道를 지키기 위해 민족적 뿌리사상이 깊게 박혀있는 환인 . 불도(桓因 . 佛道)까지 말살해야 했던가? 예나 지금이나 다를바 없는 종교적 욕망이란, 자기 조상도 마음대로 남의 나라 조상으로 바꿔치기할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bc8937] [오후 7:55] 조대기(朝代記)는 대진국(渤海)의 태자 대광현(大光顯)이 고려에 망명할 때 가지고 온 역사서이다. 고려말 사람인 청평(淸平) 이명(李茗)이 '조대기(朝代記)'를 참조하여 '진역유기(震域遺記)'를 저술하였는데 이를 북애노인(北崖老人)이 얻어보고 규원사화(揆園史話)를 저술했다고 한다. 비록 짧은 내용이지만 조대기(朝代記)에 기록된 이야기는 다른 어떤 사서보다 그 내용이 구체적이다. 예를 들자면 서자(庶子)라고 하지 않고, 서자지부(庶子之部)로 한 것, 또 "산업은 궁핍하여 그 살아갈 방법이 없어 걱정이었다." 이런 기록들이 역사적 사실감을 드높이 느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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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016-02-18 (목)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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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환단원류사 '님금나무 구입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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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환단원류사 '님금나무'가 출간되었다. 본서는 '환단원류사'를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이야기로 쓴 책이다.
 
 주인공들의 대화 속에 부도지의 핵심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말의 어원이 산스크리트였다는 사실을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꾸몄다. 상고시대에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 이상으로 '물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환인 천제는 말한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며 모든 것에 평등하다. 군주가 먼저 자신을 낮추고 만백성이 물 같이 평등하도록 가르친다. 
 
 "나라를 다스리려는 자는 먼저 물부터 잘 다스려야 한다." 
 
 천웅 . 환웅 .지소웅 세 님금은 홍수를 다스리면서 백성을 사랑하고 평등하게 잘 다스리는 법을 깨닫는다. 그들은 각각 3천의 무리를 이끌고 신 개척지를 향하여 나아간다. 
 
 환단원류사 제 2권에 속하는 이 책은 우리 환민족이 동방의 부상국과 서방의 수밀이국까지 진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흑피옥 종족의 동북방 진출 과정과 멸종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이어 홍산문화가 탄생하게 된 과정도 쉽게 알 수 있도록 그렸다. 환웅 배달환국시대 이전에 한반도는 누가 살았는지도 알 수 있게 했다. 모두 역사적 고찰과 기후학, 지질학, 고문자학, 산스크리트언어학, 수메르 점토판 해독 등을 참고하였으므로 비록 소설이지만 역사적으로 참고할 만하다. 
 
 (소설 환단원류사 '님금나무' 저자 박 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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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 저자 朴 民宇



 


 * 율곤학회천문해자학회천제환국상고사(bc8937) 홈페이지에서 공동으로 집필하였으며 21세기 '한국학 연구서'로 활용하기 위해 발간한 책이다. 총 3권으로 발간될 예정이며 총서 1 . 2권은 '환단원류사', 총서 3권은 '천문해자(天文解字)'로 구성돼 있다. '강상원박사'에 한국어 . 실담어 어원과 상고역사 총서 10권과 함께 자랑스런 학국학 총서이며 21세기에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나갈 大桓國人의 저력을 밝힌 책이다. 
 
 * 이 책은 지금 전세계적으로 한국학 배우기 열풍이 부는 때에 외국의 학자와 교수들에게 한국에 대해 가장 바르게 소개할 수 있는 책이다. 역사와 민속학 그리고 한국인의 정신, 한국인의 미래 그리고 한국어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책이며 무엇보다 아주 쉽게 쓰여졌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천부경 해설 같은 것은 실담어와 환인불교도학을 연결하였음에도 어렵지 않다는 것은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이해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책 크기 : A4(표지컬러)



 

전 550페이지 



 

정가 5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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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c8937
작성일 2019-06-23 (일) 17:17
ㆍ조회: 7  
IP: 59.xxx.201
영화 나랏말싸미 신미대사 예고편

신미대사(信眉大師, 1403~1480)





  신미대사(信眉大師, 1403~1480)는 충북 영동에서 부친 김훈(金訓)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유학자이며 숭불을 주장한 김수온(金守溫)의 형님으로 본명이 수성(守省), 본관은 영산(永山)이다.

 모친의 뱃속에서 나올 적부터 왼손 손바닥에 임금왕(王)자가 손금에 있어 부모와 삼촌들은 크나큰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신라 때부터 이조에 이르는 동안 그런 사람은 나라에 역적이 된다하여 국법에 의하여 잡아 죽였던 것이기에 죽음을 면하려고 배안 병신노릇을 아니할 수 없어 항상 손가락을 오그리고 주먹을 쥐고 살수 밖에 없었다. 

 어려서부터 인물이 잘나고 평소에 말을 잘하지 않았으나 한번 말을 내놓으면 청산유수 같았고 눈을 부릅뜨면 안광이 눌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왕이 될 만한 기품이 있었고 관상학 상으로 왕의 기상을 타고 났다고 한다. 두뇌가 총명하여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알았는데 글을 읽어 집현전 학사로 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벼슬에 마음이 없고 불가(佛家)에 뜻이 있어 자칭 신미(信眉)라 하여 머리 깍고 스님이 되었다. 





   * 출가 이유

 신미스님은 1403년 김훈의 맏아들로 서울서 태어났다. 이름은 수성(守省). 어머니는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이행의 딸이었다. 사대부 집안 가문서 태어난 수성은 성균관에서도 촉망받던 인재였다. 하지만 옥구진병마사로 있던 아버지 김훈이 조모상을 치르지 않고 임지를 떠났다는 이유로 집현전 학자였던 박팽년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이 일을 지켜본 김수성은 양주 회암사에 주석하고 있던 함허당에게 출가했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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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회암사 나들이 2019년 5월 17일


한글 창제의 유서 깊은 곳에서 하루 . . .



환단원류사학회 회원 김주식, 강상원박사, 법성 스님, 김태수 

 





  처음에 법주사에 출가하여 수미(守眉)와 함께 대장경과 율을 배웠다.



 세종은 재위 26년에 五子 광평대군(廣平大君)을 잃고, 세종27년에 七子 평원대군(平原大君)을 잃었고, 세종28년에 소헌왕후(昭憲王后)를 잃는 등 3년 동안에 세분을 잃고 인생의 허무함과 무상함을 뉘우치던 중 병환으로 고통할 적에 동생 김수온과 함께 세종을 도와 내원당을 짓고 법요를 주관했다. 또한 복천사를 중수하고 그곳에 아미타삼존불을 봉안했다.

 이 공으로 문종은 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에 임명 하였다.



 문종과 수양대군 등이 세종을 지성으로 시탕(侍湯)하였으나 효험이 없던 바 신미대사로 하여금 약을 쓰게 하니 완쾌하였다.

 그로부터 세종은 신미대사와 가까워 졌고 신미대사의 박식(博識)함에 감탄하고 인물됨에 매료되었다.

 세종은 신미대사에게 혜각존자(慧覺尊者)의 호를 내리려 하였으나 병으로 내리지 못하고, 문종에게 유교를 내리니 문종은 선왕의 뜻을 받들어 왕에 오르자 사호(賜號)하니 「慧覺尊者」라 했다.



 특히 세조와는 수양시절부터 친분이 두터웠다.  세조는 왕위에 올랐어도 꼭 尊者라 불렀고 국사로 모셨으며 세조7년에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고 신미대사를 우두머리로 효영대군(孝寧大君)과 김수온(金守溫) 등에게 불서를 언해하고 간행함에 100종에 이르렀다.

 1456년(세조 2) 도갑사(道岬寺)를 중수하여 약사여래불상 3구(軀)를 조성·봉안했다.

 1458년에 국가의 요청으로 해인사(海印寺)의 대장경을 인출할 때 이를 감독했고, 1461년 훈민정음을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간경도감을 설치할 당시 이를 주관했다.

 이때 언해(諺解)된 불경이 〈법화경〉·〈반야심경〉·〈영가집〉 등이다. 

 1464년 왕이 속리산 복천사를 방문했을 때 사지(斯智)· 학열(學悅)· 학조(學祖) 등의 승려와 함께 대설법회(大說法會)를 열었다. 이해 상원사(上院寺)로 옮겨가, 왕에게 상원사의 중창을 건의했다.



 신미는 여러 승려의 법어를 번역·해석하여 유통하게 했는데 기화(己和)의 〈금강경설의 金剛經說誼〉를 교정하여 〈금강경오가해설의 金剛經五家解說誼〉 1책을 만들고, 〈선문영가집〉의 여러 본을 모아 교정했으며, 〈증도가 證道歌〉의 주를 모아 책으로 간행했다.



 속리산 복천사(福泉寺)를 비롯하여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월정사(月精寺), 낙산사(洛山寺) 대자암 등을 중신하고, 국책으로 처불함에도 소신껏 불사에 힘썼으니 그 공이 지대하였다.



 성종10년에 열반에 올라 복천사 남쪽 200미터에 신미부도(信眉浮屠)를 세웠으니 충청북도문화재12호이다.





 





 한글 창제의 산파역할을 한 신미대사





 그가 주지로 있던 복천암은 한글 창제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도량이다.

 복천암 사적기(福泉庵事蹟記) "세종은 복천암(福泉庵)에 주석하던 신미대사(信眉大師)로부터 한글 창제 중인 집현전 학자들에게 범어(梵語)의 자음과 모음을 설명하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복천암에서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5백미터 가면 신미대사부도탑(보물 제 1416호)이 있다.

 세인의 관심을 다시 끌고 있는 세종의 왕사였던 신미대사(1403~1480)가 한글 창제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설은 그 동안 종종 제기되어 왔었다.

 그 동안의 정설은 세종대왕이 명령으로 집현전 학자들이 이의 실무 작업을 맡았고, 구체적으로는 우리 입의 발음기관을 본떴다는 것이었다. 현재 가장 유력시 되는 설은 범자(梵字) 모방설이다.

 조선초기 유학자인 성현(1439-1504)의 저서 용재총화나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도 언문은 범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한글 창제의 주역인 신미대사 친동생인 집현전 학사 김수온이 쓴 복천보강, 효령대군 문집, 조선실록, 영산김씨 족보 등 각종 자료를 근거로 신미대사가 한글 창제의 산파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세종이 한글 창제 후 불경을 언해하기 시작한 것도 신미대사의 영향이며 언해할 서책이 많은데 굳이 불경부터 한 이유는 신미대사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세종이 한글 창제의 초석을 다진 고마움의 표시로 복천암에 삼존불을 조성, 시주했으며 죽기 전에 유생들의 반대도 무릅쓰고 유언으로 신미대사에게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子)라는 긴 법호를 내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올라있지 않지만 신미대사의 속가 집안인 영산 김씨 족보에 스님이 집현전 학자로 세종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러 가지 문헌이나 기록으로 보아 한글 창제의 모델이 범어가 분명한데 그 당시 범어를 아는 스님은 신미대사 밖에 없었다고 한다.



 신미대사가 실제 한글을 창제했다고 그 사실을 밝힐 수 없었던 것은 숭유억불정책(崇儒抑佛政策)으로 집현전 학자들 중에 반대하는 학자(최만리,김문,정창손 등)들이 많았으며, 한글창제를 극력 반대하는 상소문까지 올리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세종이 한글을 오랫동안 지키고

신미스님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고 신미대사(信眉大師)에 대한 세종(世宗)의 신뢰가 절대적이었다고 한다.



 보은 속리산에는 법주사란 이름 높은 절이 있고 이 절에 고명한 스님들이 주석하였기에 이 절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혜각존자 신미대사가 한때 이 절에 주석하여 면벽관심(面壁觀心)으로 불도에 정진하고 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겨울날 밤에 이 절의 중진급스님 3.4명이 헐레벅떡 정신없이 신미대사의 수도장에 문을 두드리고 뵙기를 청하였다.

 내용인즉 이러하다 도둑 20여명이 벌떼같이 절에 침입하여 젊은 중들을 묶어놓고 장차 창고를 털 기세이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높은 스님 신미대사 의 지시를 받으러 온 것이다.

 이 놀랍고도 끔찍한 말을 전한 스님들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말도 제대로 못했다.

 이런 뜻밖의 일을 당한 신미대사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태연히 말을 했다.

 이 칠칠찮은 것들 떨기는 왜 떨어! 도둑이 떨 일이지 주인이 왜 떠느냐? 이렇게 꾸짖고는 명령을 내렸다.

 모든 창고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마음대로 다 가져가라고 했다.

 이 법주사는 토지가 많아서 일년에 천여석의 수확을 할 뿐 아니라 비단과 무명 기명과 잡화가 창고에 많았다.

 이 말을 들은 도둑들은 마음 놓고 콧노래를 부르며 쌀이며 비단이며 무명이며 기명 등 닥치는 대로 멜빵이 끊어지도록 힘껏 짊어지고 도망을 쳤다.



 긴긴 겨울밤이 보얗게 새도록 구슬땀을 흘리며 허둥지둥 도망을 쳤는데 이것이 웬일인가!

 밤새도록 죽을힘을 다하여 도망을 쳤건만 법주사 경내를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밤새도록 법주사만 뺑뺑 돈 셈이다.

 신미대사의 도력에 잡힌 것이다.

 이에 놀라고 당황한 도둑떼는 겁에 질려 솜같이 나른한 몸을 이끌고 신미대사 앞에 나가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신미대사는 태연히 도둑떼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너희들의 눈을 보니 모두 착한 사람이다. 이 순간이라도 사악한 마음을 버리면 부처가 될 수 있는데 왜들 이러느냐 마음을 바로 잡아라”



라고 이렇게 순순히 타오르는 대사의 자비로운 얼굴에는 춘풍이 만면하였다. 

 도둑들은 대사의 말에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였다고 한다.











<뿌리공원에 새겨진 영산김씨(永山金氏) 유래>





 영산김씨(永山金氏)의 원조는 신라 대보공 김알지이고 신무왕의 후손이다. 

 나, 여(羅, 麗) 양조에 걸쳐 출사입공해 오던중 고려말의 전객시령공이 영이(令貽)는 쓰러져 가는 고려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전력했으나 어쩔 수 없음을 알고 사직. 낙향 할 제 두 아들과 세 사위도 사직하고 영동(永同)으로 은거했다. 

 장자 판도판서 길원(吉元), 차자 판삼사 포(苞)와 장서 이부시랑인 순천박공 원용(元龍), 차서 한성판윤 구례장공 비(丕), 삼서 대제학 밀양박공 시용(時庸) 등 이상의 어른들은 여조에 벼슬했고 장서했다. 

 신왕조 조선이 개국되자 비로소 출사 했으니 종경(宗敬)은 우천성을 이르렀고 이어서 아들 훈(訓)은 영의정이요 그 아들 수온(守溫)은 당대의 대학자요 이조 팔대 문장가로 많은 시문과 저서가 있었고 벼슬은 판서 대제학 영중추 부원군에 이르렀다. 

 특히 저서 월인천강지곡은 불후의 명작이다. 

 이하 후손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명인 달사가 많았지만 다 기록하기 어렵고 임정요인으로 조국독립을 위하여 활동하다가 만리이역에서 서거한 김철(金澈)의 유해가 아직 환국을 못한 것이 유감이다. 

 조선조의 대학자요, 팔대문장가(八大文章家)인 김수온 (金守溫)은 창공에 높이 솟은 문필봉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 하여 작품에 문필봉을 상징화 했음. 

 아무리 뛰어난 예지와 상념일지라도 실천이 있어야 진가가 발휘된다. 손은 실천을 상징함과 동시에 전진을 상징했음. 

 월인천강지곡은 불후의 대작이요, 명작임을 손을 들어 대중에게 과시하고 있음. 

 후면의 학은 현실세계와 이상세계를 조화하여 영원히 발전해 가는 영산김씨의 미래상을 상징화 했다. 



 영산김씨(永山金氏)는 김영이(金令胎)를 1세조로 받든다. 기록을 보면 김영이(金令貽)는 신라 제45대 신무왕(神武王)의 넷째 아들 김익광(金益光)의 후손으로 고려 때 전객서령(典客署令:고려때 빈객의 연향(宴享:국빈을 대접하는 잔치)을 보던 관청으로 태조4년(921)에 두었고 충렬왕24년(1298)에 전객시로 바꿈.

 령(令)은 종3품 벼슬)을 지내고 죽은 후에 [추충동덕보사공신]으로 검교 도첨의찬성사(檢校 都僉議 贊成事:도첨의의 정2품 벼슬.검교는 벼슬앞에 붙이는 명예직)에 추증되고 영산군(永山君)에 추봉되었다.



시조 김영이(金令貽)의 아들 김길원(金吉元)은 고려 공민왕 때 판도판서(版圖判書:고려시대에 호부상서로 고치기 전의 판도사의 으뜸 벼슬)에 올라 유명하였는데 판도판서로 있을 때 홍건적을 토벌하고 공민왕을 안동으로 호종(扈從:왕가를 뒤따름)한 공으로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에 봉(封)해지자 후손들이 김영이(金令貽)를 1세조(一世祖)로 받들고 영산(永山.영동 永同)을 본관으로 삼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산부원군 김길원(1328~1396) 묘역 <충북 영동군 영동읍 산이리 분통골> .김길원은 홍건적을 토벌하고 공민왕을 복주(안동)로 피난시킨 공으로 영산부원군에 봉해졌다.



 김길원(金吉元)의 아들 김종경(金宗敬)은 정종 때 춘추관(春秋館:시정의 기록을 맡아본 관아)과 성균관(成均館:유교의 교육을 맡아보던 관아)의 벼슬을 역임한 후 도총관(都摠管:오위도총부의 정2품 벼슬)에 올랐다.

 또한 김종경(金宗敬)의 장남 김 훈(金訓)은 소윤(小尹:정4품 벼슬), 둘째 아들 김 량(金諒)은 참판(參判:6조의 종2품 차관)의 벼슬을 지내면서 영산김씨가문은 대를 이어 명성을 떨쳤다.



 조선초기에 영산김씨는 김종경의 손자 김수온(金守溫:1409~1482)이 세종과 세조때의 명신으로 많은 일화를 남겨 가문을 중흥시켰다.



 서기 1441년(세종23)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한 김수온은 중시(重試:이미 급제한 문신에게 거듭보는 시험으로 이시험에 합격하면 당상관에 보임됨)를 거쳐 발영시(拔英試)와 등준시(登俊試)에 모두 장원하고 교서관 정자(校書館 正字:교서관은 경서.문서등의 교정을 맡아보던 관청. 정자는 정9품 벼슬)로 있으면서 세종의 특명으로 집현전(集賢殿)에서 치평요람(治平要覽:역대의 사적 중에 귀감이 될만한 사실만을 뽑아서 엮은 책)과 의방유취(醫方類聚:세종의 명으로 편찬된 동양최대의 의학사전)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부사직(副司直:오위의 종5품 무관직)으로 있을때는 석가보(釋迦譜)를 증수(增修)하였다. 



*발영시(拔英試)-1466년(세조12) 문.무백관에게 임시로 실시한 과거로 5월10일 단오때 문신 100여명에게 지필을 주어 즉석에서 각자 시.부.송을 지어 올리게했는데 신숙주.최항이 시관이 된 이 시험에서 함격자 34명중 김수온이 장원을하였고 세조는 김수온에게 쌀 20섬을 하사하고 3일간 연회를 베풀었다 함.



*등준시(登俊試)-세조12년(1466년) 8월 왕이 현직 관리와 종실.부마 등을 대상으로 시험을 보게 한것으로 왕이 과거제목을 정하고 <신숙주.노사신.한계희> 등을 대독관으로 삼아 강년전에서 시험을 보았는데 이때도 김수온등 12명이 1등을 함.



그후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왕명을 출납하고 궁중을 숙위한 중추부의 으뜸 종1품 벼슬)에 올라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고 하며 항상 청빈하게 살았다고 전한다.



 서기 1471년(성종2)에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책록되어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에 봉해졌다.학문과 문장(文章)에 뛰어나 명나라에 까지 문명(文名)을 떨쳤다고 한다.



당대의 석학(碩學)인 구종직(丘從直)은 김수온이 남의 표문(表文:외교문서)을 지어준것을보고 모래위에 꿇어 앉으면서 "평소에 공(公)의 문장이 교묘하다는 말은 들었으나 이 경지에 이를 줄은 몰랐오"라며 극찬했다고 한다.



 김수온의 형인 김수성(金守省)은 신미(信眉)라는 법명으로 탈속하여 웅문거필(雄文巨筆)로 유명하였다고 하며 속리산 성불사 복천암(福泉庵)에 그의 사리(舍利)가 있다.



 김수성은 석보상절(釋譜祥節)의 편찬에 동생인 김수온과 함께 형제가 참여한것으로 유명하다.

석보상절은 석가보.법화경 등에서 석가의 일대기를 뽑아 한글로 엮은 책으로,1446년(세종 28)에 소헌왕후가 죽자 세종이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양대군에게 명하여 석가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한글로 번역하게 하였다. 

 이에 수양대군은 김수성(신미)과 김수온 형제의 도움을 받아 편찬·간행하였다.



 다음해인 세종 29년(1447) 세종은 이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김수온의 도움으로 찬가 <월인천강지곡.보물 398호>을 지었는데 이것이 불후의 명작이 되었다.



 월인천강지곡의 특색은 

 첫째, 한글은 큰 활자를 쓰고 이에 해당되는 한자는 작은 활자를 썼다.

 둘째, 한글의 자체는<용비어천가>와 같으나 원점을 쓰지 않았다.

 셋째, <훈민언해>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받침 없는 한자음에 ‘ㅇ’의 종성을 붙이지 않았다.



 최초의 한글활자본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유물이며 조선 전기의 언어와 어법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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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후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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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c8937
작성일 2017-09-24 (일) 09:13
ㆍ조회: 572  
IP: 218.xxx.8
무(巫)의 근원(根原) / 도통(道統)과 선통(禪統)

 무(巫)의 근원(根原) / 도통(道統)과 선통(禪統)  

 

https://blog.munpia.com/choa1224/novel/94291

웹소설 싸이트 '문피아' 에서 절찬리 연재中



휴대전화로 접속하시면 검색창에 한민족사를 입력하시면 들어갑니다. 

 

 

무(巫)의 근원(根原) / 도통(道統)과 선통(禪統)

 

 

환인씨께서 개천하시던 아주 오랜 옛날에는 도통자들이 아주 많았었다.

환인씨와 환웅천황은 물론이고 단군 그리고 유위자, 석자장, 자부선인과 복희씨 등은 모두 도통자의 이름이다.

노자, 공자, 석가 또 예수도 있고 그들을 믿고 따르며 수행하였던 맹자를 비롯한 제자백가와 오백나한 등은 대표적인 도통자들이다.

그러나 예수 이후 성인의 출현은 크게 줄었다. 그것은 시대의 가치관과 사상 철학 규범 등이 점점 혼탁해 지고 무엇보다 인간은 전쟁을 일으켜 인류 공존공영의 길을 막고 스스로 살아가야하는 존재 능력까지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만하여도 인류의 존재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변했으며, 바다와 땅의 오염과 인간성 상실까지 합치면 하늘과 땅과 사람이 총체적으로 병든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 성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되었다.


 중국인 학자 서량지(徐亮之)씨가 저서한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 있는 중국민족기원어탑리목분지(中國民族起源於塔里木盆地)편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上帝之下都, 太帝之居, 天皇被跡的聖地, 我們業已知道, 所謂 開天闢地, 首出御世的盤古氏, 乃套取苗等族的人類起源設.”

 

 "상제의 도읍지 아래 태제(太帝)가 살고 있었다. 그곳은 천황(天皇)이 자리한 성지(聖地)이다. 아문(我們) 즉 군신(君臣) 또는 천황(天皇)의 무리들은 도(道)를 알기 위함을 생업(生業)으로 생각하였다. 소위 하늘이 열리고 땅도 열었으니, 처음으로 으뜸가는 사람이 세상(世上)에 나타났다. 그가 반고씨(盤古氏)이다. 이에 묘(苗)의 무리와 다른 종족까지 크게 뭉쳐 함께 일어난 것이 인류의 기원설(起源說)"

이라고 적고 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상고시대(上古時代)에 도(道)를 통하는 것이 생업(生業)이라고 할 정도로 그때는 밥을 먹고 사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이 도(道)를 통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상고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선인(仙人)이 많았으며 선인(仙人)은 천산(天山), 곤륜산(崑崙山), 삼위산(三危山), 돈황(敦煌) 등지에서 수도(修道)하는 것을 주업(主業)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그중에는 천문(天文)의 도(道)까지 깨달아 신선(神仙)의 경지에 올랐던 사람도 아주 많았던 것이다. 그것은 앞장에서 서술한 동기부여가 확실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선(仙)은 도(道)와 다르다. 선(仙)은 몸과 마음의 수련을 통해서 얻을 수 있지만 도(道)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仙)과 함께 경전(經典)을 공부(工夫)해야 한다. 그것은 道라는 글자에 그렇게 표현 되어있다. 사람이 책을 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도덕경과 서승경을 쓴 노자(老子)는 도인(道人)으로 보아야하며 선인(仙人)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불교에서는 선(禪)이라하고, 서양에서는 세인트(Saint) 성인(聖人) 할 때 성(聖) 등은 모두 산스크리트를 어원으로 하고 있다. 산스크리트는 범어로 성스러운 문자라는 뜻이며 산(San) = 성(聖)이다.

선(仙)의 뜻이 모두 수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결과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선(仙)은 산에 사람이 있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가 된다.

고자(古字)에는 선(仚) 이렇게 생긴 글자였으며 신선, 불로불사(不老不死), 산에서 사람이 날아다니는 뜻으로 쓰인 글자이다.

 현대인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선(仚)은 기(氣)가 충만한 상태에서 불로불사(不老不死)하였으며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날아다니는 뜻으로 옥편에 기록되어 있다.

 도통(道統)과 선통(禪統)의 다른 점을 설명하면 선통(禪統)은 선(仚)을 익힌 사람이 공부를 하지 않아도 오를 수 있는 정신세계의 최고 경지를 말하며, 도통(道統)은 먼저 선통(禪統)을 이루고 난 후에 더 정진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반드시 天 . 人 . 地로써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통달한 후에 오를 수 있는 경지이다.

 

 상고시대에는 지구의 기운(氣運)이 지금보다 백배 천배 더 좋았기 때문에 사람이 선(仙)을 수행하기는 참 좋은 환경이었다.

특히 환인씨(桓因氏) 일곱 분이 모두 천산(天山)에서 득도(得道)하였으므로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약 3천 년 동안 수 억 명은 족히 되었을 것이니 환국은 과연 신선의 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 해동역사(海東繹史) 제28권 풍속지(風俗志) 방언(方言)편에 하늘(天)의 한자(漢字) 표기는 파내류(波乃留)라 기록하고 있다.삼성기(三聖記)의 파내유(波奈留)는 천산(天山)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학식이 없어도 선통(禪統)은 가능했다. 그러나 도통(道統)은 선통(禪統)처럼 쉽게 이루어 지지 않는 것임을 알았다.


사람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다는 통(通, 統, 桶)의 어원은 '뚱이' 이다. 쌍둥이, 칠삭둥이, 늦둥이처럼 지금도 쓰이는 용어이다.

통은 둥글게 만들기 때문에 그 형상에 따라 우주를 뜻하는 것으로 실담어 이다. 그래서 동이(東夷)는 도통한, 지혜가 충만한, 천문을 통달한 우수한 민족을 뜻하는 것이다.        

 

 무(巫)의 어원은 뚱이에서 탄생한 말이다. 무(Mu)는 마(Ma)에서 탄생한 언어이며 생명의 근원, 지혜의 뜻이 있다. 처치워드는 무(Mu)제국이라 하였으며 국가를 뜻하기도 한다.

무(巫)는 산스크리트어로 메다(Medha)이며 정신력, 지혜를 이르는 말이다. 오늘날 의학을 뜻하는 메디칼(Medical)의 어원이 메다(Medha)이다.(朝鮮 古語 실담어 註釋 辭典 참고)

 

 무(巫)는 하늘(ㅡ)과 땅(ㅡ)을 사람이 연결(ㅣ)하고 사람 속에 또 사람이 있는 형상으로 한 몸에 두 사람이 있는 것으로 쓰여 진 글자이다.

무(巫)가 되는 것은 神으로 부터 통과의례(通過儀禮)를 거친다는 의미이다. 그 속에 천부삼인(天符三印)이라는 한民族의 DNA가 내포되어 있다.

상통천문(上通天文), 중통인의(中通人義), 하찰지리(下察地理)를 얻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과 수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무(巫)였다.

이처럼 상고시대에는 신 내림 이란 것이 氣적인 현상을 동반하는 것이었으며 보통 인간은 근접할 수 없는 초능력의 세계를 말한다.   

 황궁씨(黃穹氏)에서 유인씨(有因氏) 환인씨(桓因氏) 환웅씨(桓雄氏) 임검씨(壬儉氏) 부루씨(夫婁氏)에게로 천부삼인(天符三印)이 이어졌다는 것은 무(巫)의 전통을 천부삼인(天符三印)이라는 통과의례(通過儀禮)를 거쳐 무(巫)를 계승해 왔다는 말과 같다.

그러한 전통이 후대에도 오랫동안 이어졌지만 당요(唐堯)가 부도(符都)를 배반한 이후부터 점차적으로 그 기운이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후대로 갈수록 무(巫)는 제사장이 되었고 지금은 무당이 되었다.

하지만 무(巫)의 근원은 하늘로부터 부여된 사람의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원래는 백성을 다스리는 초능력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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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환단서림
작성일 2017-08-30 (수) 08:29
ㆍ조회: 473  
IP: 218.xxx.8
한민족사 5분 강의 연재





  한민족사 5분 강의  / 불함삼역(不咸三域)


 불함삼역(不咸三域)이란 부도지에 나오는 말이다. 산해경에는 불함산(不咸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불함(不咸)의 뜻을 한자로 해석하기 곤란하다. 왜! 불함(不咸)이라고 하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불함산(不咸山)이 백두산(白頭山)이라 하면서도, 백두산(白頭山)이 왜! 불함(不咸)이라 하는지 그 뜻을 알지 못한다.
 육당 최남선 선생은 불함을 밝, 광명, 하늘, 하늘신(天神)을 뜻하는 고어로 풀었으며, 백두산을 중심으로 기원한 아시아 문화를 불함문화권이라고 하였다. 대체적으로 정확하게 풀었지만 어원을 알지 못한 것 같다.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은 육당(六堂) 최남선이 1927년 ≪조선급조선민족(朝鮮及朝鮮民族 : 조선과 조선민족)≫(경성, 조선사상통신사) 제1집에 발표한 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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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함삼역 연환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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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 방장, 영주의 위치 배달국 시대는 바다가 없었고 육지 초원이었다.







 부도지에는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州) 삼역은 사해의 부족들이 찾아와 조공하였고 신비한 특산물을 구해서 갔다고 기록하고 이를 불함삼역이라고 하였다. 
   “ 부도지 제 16장 (第十六章)
 來市者이 又取三靈之根於瀛州岱與山하니 卽人蔘也라. 謂之瀛州海蔘하여 能保三德而歸라
 시(市)에 온 사람들은 영주(瀛州) 대여산(岱與山) 계곡에서 삼영근(三靈根)을 얻으니, 곧 인삼이었다. 그것을‘영주 해삼’이라 하였으며, 능히 삼덕(三德)을 보전하고 돌아갔다.


 盖人蔘이 具其數格하여 生於磁朔之方者이 必長生하니 以四十歲謂(爲) 一期休眠하고 二一三期爲一朔而蓄精하고 經四朔而結子乃化하니 如是者는 非符都之域卽(則)不得也라.
 대개 인삼이 그 수와 격(수격:數格)을 갖추어, 자삭방(磁朔方)에서 난 것은 반드시 장생하니 40세(歲)를 1기로 휴먼하고, 13기를 1삭(朔)으로 정기를 쌓고(축정:蓄精), 4삭을 경과하여 씨(子)를 맺어 화(化)하니, 이러한 것은 부도의 지역이 아니고는 얻을 수가 없다. 故로 曰方朔草하니 世謂之不死藥이 是也라. 其或小根이라도 産於符都之域者는 皆有靈效故로 來市者이 泌求之也러라.
 그러므로 방삭초(方朔草)라 하니, 세상에서 불사약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다. 혹 작은 뿌리라도 부도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신령한 효험(영효:靈效)가 있으므로, 시(市)에 온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구하였다. 大抵三根靈草人蔘과 五葉瑞實栢子와 七色寶玉之符印은 眞是不咸三域之特産이오 四海諸族之天惠라. 
 대저 삼근영초(三根靈草)의 인삼과, 오엽서실(五葉瑞實)의 잣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의 부인(符印)은 진실로 불함삼역(不咸三域)의 특산이요, 사해제족(四海諸族)의 하늘의 은혜였다“


 그 지역은 청구의 강역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아래 지도는 서해가 과거에 육지였으므로 바다의 크기를 지금보다 작게 그렸다. 이곳은 뽕나무의 원산지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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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래(蓬萊)에서 방장(方丈)을 거쳐 영주(瀛州)로 가는 길이 점점 높아지는 수풀이 우거진 산이었으므로 이 세 곳을 합쳐 삼신산(三神山)이라고 하였다. 삼신산(三神山)은 배달환국의 수도였다.

  불함은 산스크리트이며 브라흐마(Brahma)라고 한다. 브라흐마(Brahma)는 환민족의 삼신에 해당하는 우주의 생멸을 관장하는 神이다.
 인간에게 숨을 불어 넣어주는 神이므로 브라흐(Brah)는 영어로 브레쓰(Breathe)의 어원이 되었다. 살다. 숨쉬다. 존재하다. 등의 뜻이다. 그리고 마(Ma)는 모(母), 엄마를 뜻한다. 그러므로 브라흐마(Brahma)는 생명을 탄생시키고 숨을 불어넣는 일을 하는 神이다.
 인간의 수명은 길어야 100년이고 하루의 길이는 24시간이지만 우주의 생멸을 관장하는 브라흐마(Brahma)는 인간의 시간으로 86억 4천 만 년을 지내야 하루를 산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브라흐마(Brahma)는 영생불사의 상징이기도하다.   
 현재의 범천은 1백 55조 5천 2백억 년 전에 브라흐마(Brahma)가 만든 것이며, 최초의 인류 마누스를 태어나게 한 것도 브라흐마(Brahma)에 의해서였다. 
 우리말의 기원이 산스크리트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브라흐마를 힌두교의 神이라고 말하기 전에 힌두교의 기원이 우리 환민족의 정통 광명사상에서 나왔음을 깨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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