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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는 동서 문명의 뿌리 . 인도-유럽어의 기원 산스크리트
Sanskrit Language Cognate Indo-European Languages

작성자 김태수(펌)
작성일 2017-06-28 (수) 22:56
ㆍ조회: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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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통사상과 전통사상의 수난속에 자리잡은 우리생활습성과 고별
우리나라 정통사상과 전통사상의 수난속에 자리잡은 우리생활습성과 고별

동방의 나라 정통사상은 무엇인가?
또한 우리의 전통 사상은 무엇인가? 
구분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알기 어렵다.
고래로  동북. 중앙아시아의 사상은 유목민족으로 출발하여 반농,반수렵을 거쳐 농경국가로 정착 되었다.샤머니즘(샤먼은 시베리아인과 우랄 알타이어족의 종교와 세계 다른 민족들의 유사 종교에서 병자를 고치고 사후 세계와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믿어지는 인물이다. 
샤머니즘의 가장 완전한 형태는 극지방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되지만,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 북아메리카의 여러 원주민 집단에서도 발견된다. 샤먼은 치유자이자 제주이며, 병을 고치고 제사를 주관하며, 죽은 자의 영혼을 사후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모든 문화에서 샤먼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치유이다. 일정하게 몸을 흔드는 것은 샤먼이 저승으로 내려가 죽은 자의 영혼을 안내하여 새로운 거주지로 인도하는 과정을 나타낸다. 

샤머니즘은 원시종교의 특성을 지닌 신비적 경험이지만, 단순히 신비가일 뿐 아니라 그 부족의 전통적인 구전을 지키는 자이기도 하다) 주술을 바탕으로 한국의 샤머니즘은 엑스터시와 빙의(憑依 possession:신내림)를 통해 의무(醫巫)·사제(司祭)·점사(占使)·영매(靈媒) 등의 역할을 하는 복합체, 즉 무당(巫堂·巫)을 뜻한다. 무당은 지역에 따라 달리 불리는데, 영남에서는 무당·보살·삭세기, 전라도에서는 단골, 제주도에서는 심방으로 불린다.
그러나 
무당은 이러한 여러 하위범주를 포함하는 상위개념이다. 샤머니즘의 종교적 표상은 성무(成巫) 과정, 신령과의 접촉과정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성무 과정은 지역적으로 크게 2가지 유형으로 나뉘어 나타난다. 북부지역에서는 빙의 현상이 표면으로 나타나는 강신 현상이 현저하게 드러나는 반면, 제주도를 비롯한 남부지역에서는 엑스터시 현상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창무(唱舞)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강신무는 신병(神病:巫病)의 체험을 통해 무당이 된다. 이에 비해서 세습무(世襲巫)는 조상의 혈통을 따라 대대로 사제권을 계승하여 무당이 된다. 다시 말해서 강신무는 신의 영력에 의해서, 세습무는 사제권의 인위적 세습에 의해서 무당이 되는 것이다. 세습무일수록 우주관·영혼관·내세관이 희박하고 무가도 일정한 양식으로 격식화되는데, 무가에는 놀이와 풀이의 양면성이 존재한다. 무의 요건은 무병·도무·신탁(神託)·무복(巫服)·무가·무구 등이다.

무당들은 일반인과는 혼인을 할 수 없으며, 동성동본 불혼율이 적용된다. 씨족외혼을 원칙으로 하고, 무당끼리 혼인하는 직업내혼적 성격을 띠기도 한다. 또 무업을 하도록 유리한 모방친척(模倣親戚)을 확대하여 넓은 관계망을 형성한다. 무당사회에는 여성의 역할이 확대되어 있으며, 혈연·직업 등으로 사회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무는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사회적·종교적·문화적 위치를 외래문화에 빼앗겼지만, 불교·도교 유교 카톨릭 기독교 등의 여러 종교와 융합하는 과정에서 관념적 토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실체적 토대는  우리 생활양식에 반영되어 오늘의 우리 생활 문화의 도(道)에 반영되어 있다.여기서 정통과 전통의 구분이 필요로 하고 우리 문화를 바로 알기 위함에 있다.그러면 앞에서 말한 관념적 토대에 실체적 토대를 우리 민중에게 밀착하게 된 사상은 초기 유학자인 신라 경덕왕 때의 학자. 신라 십현(十賢) 중의 한 사람인 설총이다.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적는 표기법인 이두를 집대성하였으며, 강수 · 최치원과 더불어 신라 3대 문장가로 꼽힌다. 

(1). 홍익이념(弘益理念)의 참 뜻
한국사상(韓國思想)의 출발점은 단군신화(檀君神話)에 있다.여기선 단군(檀君)의 실재(實在)와 역사는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다만 우리의 선인(先人)들이 단군신화의 형태를 통하여 민족의 이상(理想)을 제시했고 사상의 방향을 가르쳤으므로 우리는 단군의 실재 여부보다 그 신화에 담겨진 사상을 음미(吟味)하면 된다.
단군신화에 보면, "하느님인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理念)을 품고 태백산(太白山)에 내려와서 단군(檀君)을 낳고 단군이 우리나라를 개국(開國)하였다."단군신화에는 동방사상(東方思想)의 공통점인 자연주의적 성격이 나타나 있고, 그 자연주의적 성격이 평화사상(平和思想)으로 결집되어 있다. 
자연에 순응하는 농경적(農耕的) 생활 양식에 있어서는 평화사상은 필연적 귀결인데 그 중에 있었서도 단군신화의 평화적 성격은 그 유례가 없으리 만큼 전형적이다.환웅(桓雄)이 천상(天上)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과정도 어느 나라의 신화보다 평화적이고 건설적이다. 

대개의 경천 최상의 신(神)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은 무슨 죄(罪)를 지어 천상에 있을 수 없어서 지상으로 추방되는데, 우리 단군신화에 있어서는 환웅(桓雄)이 지상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위대한 경륜(經綸)을 지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지상으로 내려오게 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보면,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자주 천하를 생각하고 인간세계를 탐구(貪求)하였는데, 아버지가 그 뜻을 알고 아래를 보니,삼위태백(三危太白)이 홍익인간(弘益人間)할 만한 곳이라, 여기에 내려보내서 세상을 이치(理致)로 다스리게 했다." 고 했는데, 수의천하(數意天下),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의 이념은 지상천국(地上天國)의 평화적 건설 이념이다.
홍익인간의 이념은 사익(私益)과 공익(公益)을 협동시킨 이념이다. 오늘날 이익을 위주로 하는 개인주의적(個人主義的) 사상과 공익을 위주로 하는 전체주의적(全體主義的) 사상이 대립되어 그것이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개인주의에 있어서는 이익을 위주로하는 나머지 자유에만 치중하여 전체의 공익과 평등을 해치는 경우가 있고, 전체주의에 있어서는 공익을 위주로 하는 나머지 평등에만 치중하여 개인의 사익과 자유를 해치는 경우가 있다.그런데 홍익(弘益)이라는 이념은 개인과 전체를 다 포함시키고 있다.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생활 양식은 경쟁이요, 전체주의적, 평등주의적 생활 양식은 투쟁이다. 전자는 주로 서방세계의 생활 양식이요, 후자는 주로 중방(中方)세계의 생활 양식이다. 전자는 종교적으로는 다신론(多神論)이요, 후자는 종교적으로는 일신론(一神論)이다. 
경쟁형 사회에 있어서는 다원적(多元的) 경쟁자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자가 최후에 살아 남는다. 투쟁적 사회에 있어서는 일원적(一元的)인 강자가 약자를 힘으로 정복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각 민족은 대개 그 역사적 출발점에 있어서 그 민족의 생활 원리를 나타내는 건국신화를 가지는데, 그 유형은 투쟁형이나 경쟁형이 많다. 투쟁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이를 말살(抹殺) 하려는 것이요, 경쟁은 존재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자기의 우위(優位)를 확보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단군신화는 투쟁형도 아니고 경쟁형도 아니다. 
그것은 협동형이다. 투쟁형과 경쟁형의 차이는 전자가 상대방을 말살해 버리는데 반해, 후자는 상대방을 말살해 버리는 것이 아니고, 그 존재를 인정하되, 서로가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여 자기의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쟁과 협동의 차이는 무엇인가?
경쟁이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임에 반하여, 협동(協同)은 상대방의 장점을 활용하여 피차간에 다같이 이익을 보고자 함에 있다.
인류의 역사 발전을 보면 투쟁 상태로 옮겨 왔다. 오늘날 세계는 평화 공존 또는 해빙(解氷)의 시기라고 하는데, 이는 인류가 오랫동안의 투쟁 상태에서 벗어나 경쟁 상태로 들어온 것을 말한다.
오늘날 세계적 경쟁의 시대로 들어갔지만, 그러한 경쟁 상태가 다시는 국제적 투쟁인 전쟁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보장(保障)도 없거니와, 비록 다시 인류에게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드라도, 경쟁 상태에서는 인류의 장래가 평화스러울 것이라도 보장도 없다. 

왜냐 하면 경쟁의 방법은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경쟁이, 오래 계속되면 인류는 각 민족의 약점만 노출되어, 드디어는 문명 그 자체가 퇴화(退化)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인류가 앞으로 평화를 이룩하여 더높은 문명을 창조하려면, 피차가 서로 장점을 활용하여 상대방과 같이 살고자 하여야 하겠고, 그리되면 거기에 인류(人類)가 피차간에 장점만이 발달되어, 서로가 큰 이익을 보게 될 것이고 새로운 위대한 문명(文明)을 창조할 수가 있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협동(協同)의 원리요, 홍익(弘益)의 이념이다.인류의 평화는 협동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요, 투쟁이나 경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군의 건국이념에 있어서는 협동(協同)의 이념을 인간의 본성에 유래시켰는데,인간의 본성(本性)이라는 것은 인간이 신(神)과 동물의 협동적 소산(所産)이라고 보았다.단군 한배검(檀君王儉)의 정신은 동방적(東方的), 농경사회(農耕社會)의 생활 이념인 평화성을 협동성으로 승화(昇華)시켰고, 그것을 홍익인간이라는 이념으로 완결시켰다.

(2).  풍류도(風流道) 사상의 본질
단군 한배검의 홍익인간 이념이 외래사상인 유교(儒敎)와 불교(佛敎)와 도교(道敎)와 만나게 될 때, 여기에 풍류도라는 조화사상을 낳게 하였다. 신라 때의 석학이요,시인인 고운 최치원이 지은 난랑비서에 의하면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풍류라고 한다. 
자세한 것은 선사(仙史)에 적혀 있는데, 실로 삼교를 포함하고 민중을 교화한다. 가정에서는 효(孝)를 하고 국가에는 충(忠)을 하는 것은, 공자의 유교와 같고,무위의 일을 하고 불언(不言)의 교(敎)를 행하는 것은. 노자의도교(道敎 또는 仙道)와 같고,제악(諸惡)을 하지 않고 제선(諸善)을 하라는 것은, 석가의 불교와 같다."고 하였다.

풍류도는 화랑도(花郞道)라고도 하는데, 이는 홍익사상에 연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창시(創始)한 것도 아니고, 계절풍적 풍토에 연유하는 농경생활에서 자연히 우러난
단군사상의 발전 형태이다. 단군의 홍익사상은 원래가 자연 발생이기 때문에, 그렇게 체계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까닭에 이 사상이 이로정연(理路整然 )한 외래사상에 접하게 되면, 자연히 소멸해 버리거나 또는 그 외래사상을 흡수하여 대성(大成)할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풍류도의 원류인 홍익사상은 하필 신라(新羅)에만 고유(固有)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요, 
백제(百濟), 고구려(高句麗)에도 그 유풍(遺風)이 남아 있을 것이다.그런데 웬일인지 백제(百濟)나 고구려(高句麗)에 있어서는 그 전통이 유지되지 못하고,외래사상에 흡수된 것 같다. 유독 신라(新羅)에 있어서만 외래사상을 잘 소화시켜 홍익사상을 풍류도로 발전 시켰다. 

우리는 신라의 그러한 문화적 자주성(自主性)을 불교의 수용 과정에서 엿볼 수 있다. 불교가 맨처음 고구려(高句麗)에 전파되고 그 다음에 백제(百濟)에 전파되고 신라(新羅)에는 제일 늣게 전파되었다. 그런데 고구려나 백제의 역사에 있어서는 불교가 들어오는 데에 대한 고유신앙의 저항의 자취가 없다. 소박한 홍익사상(弘益思想)은 이로 정연한 불교 앞에서 그대로 항복을 한 것 같이 보인다.
그런데 유독 신라에 있어서는 불교의 수용에 있어서 고유신앙의 저항이 심했고, 결국은 이차돈(異次頓)의 순교(殉敎)가 있고서야 비로소 불교가 정식으로 받아들여졌다.이차돈(異次頓)의 순교는 불교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것은 한국의 고유 사상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한다고 생각된다.
이차돈의 순교가 없이 불교가 안이하게 받아들여 졌다면, 불교도 그다지 발전을 못했을 것이요, 또 고유신앙도 그다지 발전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차돈의 순교로 말미암아 불교는 더한층 발전의 계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이차돈의 순교로 말미암아 고유사상(固有思想)은 더한층 발전의 계기를 갖게 되었다.
신라의 불교는 고구려나 백제보다는 찬란(燦爛)하였고 중국과 일본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또 신라는 단군(檀君)의 홍익사상(弘益思想)을 풍류도(風流道)로 승화(昇華)시켜 폭넓은 민족문화(民族文化)를 형성시켰다.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로 말미암아 신라 불교는 새로운 문화로 성장할 수 있었고 고유사상은 그 폭을 넓힐 수가 있었다. 이차돈의 순교로 말미암아 불교와 고유사상 사이에 협동적 관계가 성립했다. 
불교는 결코 고유사상을 말살시키고자 하지 않았고 그 장점을 살리려 하여 여기에 불교와 풍류도(風流道)는 다같이 공존하면서 다같이 발달했다.신라(新羅)의 고유신앙(固有信仰)이 새로운 외래사상인 불교에 대하여 저항(抵抗)을 하면서도, 그 장점을 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불교가 재래의 고유사상에 대하서 그것을 극복(克服)하고자 하면서도, 그 장점을 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의 신라(新羅)의 고유사상(固有思想)에 있어서는 자연중심적인 생활 태도로 인하여 경치 좋은 곳에서 청년들이 수양하고 그곳에서 기도하는 도장(道場)을 가졌었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 사찰에 남아 있는 산신각(山神閣)이나 칠성각(七星閣)의 전신(前身)이었다고 생각된다. 산신각이나 칠성각은 일종의 범신교적(汎神敎的)인 자연숭배교에 유래하는 것으로 그것이 도교(道敎)에 연유한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산신령(山神靈)이나 칠성(七星)을 숭배(崇拜)하는 사상은 반드시 도교(道敎)를 채용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단군신화(檀君神話)에서 설명할 수가 있다.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에 산신(山神)이나 칠성(七星)을 모시는 고유신앙이 있었을 것이요, 그 자리에 산찰(山刹)을 세우면서 산신각과 칠성각을 합께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 뒤에 산신이나 칠성을 모시지 않던 곳에 새로 사찰(寺刹)을 지을 때에도 산신각과 칠성각을 함께 짓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불교는 어디까지나 석가모니를 신앙하는 종교요, 산신(山神)이나 칠성(七星)을 숭배하지는 않는다.

불교가 비유교적(非儒敎的)인 산신이나 칠성을 같이 신앙케 했고, 또 산신이나 칠성을 신앙하는 사람이 석가모니(釋迦牟尼)를 함께 신앙케 된것이 바로 한국불교의 특색인데, 그 곳이 한국사상의 포괄성(包括性)과 관용성(寬容性)과 조화성(調和性)이 드러나 있다.
최치원은 신라의 고유사상과 외래사상과의 관계를 말하는데 있어서 풍류도라는 고유사상에는유교, 불교, 도교라는 외래사상이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그 당시에 있었서 유교, 불교, 도교라하면, 그때의 동방사상(東方思想)을 총칭한 것이요, 그 유불선 사상(儒佛仙思想)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그 것을 종합지양(綜合止揚)하기 보다, 한층 더 고차원적(高次元的)인 입장에 서 우리 나라의 고유사상 가운데 유불선(儒佛仙)이 모두 들어 있다는 그 주체적이고 관용적(寬容的)인 발상법(發想法)에 우리는 경탄을 금할 수 없다. 

고운 최치원의 이러한 발상법이 곧 신라문화의 성격을 규정짓는 것으로, 신라에 있어서는 위대한 불교승려는 곧 화랑(花郞)이 되었으며, 또 위대한 화랑은 곧 위대한 불교 신앙자였다.
우리는 최치원이 풍류도는 유교, 불교, 도교,를 종합해서 이루었다고 말하지 않은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풍류도가 유교, 불교, 도교를 종합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치원은 그렇게 표현하지 않고 풍류도 가운데 유교, 불교, 도교가 다 포함되 어 있다고 했다.
풍류도에는 유교적인 충효사상과 도교적인 무위사상과 불교적인 권선사상이 다 포함되어 있는 그 외에도 유교, 불교, 도교와는 또 다른 요소가 들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풍류도에 관한 자세한 기록인 선사(仙史 )라는 책이 지금에 전하지 않아서 그 내용을 알 수 없으나, 풍류도가 단순하게 유불도(儒佛道) 삼교를 종합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의 최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탐구(探求)하기 위해 다시 단군신화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단군신화가 그것이 실린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저자인 일연(一然)의 불교적 신앙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가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환인(桓因)을 제석천(帝釋天)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군신화의 성격은 결코 불교적이 아니다. 
천상의 국가보다 지상의 국가, 내세(來世)보다 현세(現世)에 장점을 둔 것은, 오히려 유교적
색채(色彩)가 있다.단군이 돌아가신 뒤에 산신(山神)이 되었다는 것은, 도교적(道敎的 )색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단군신화에 있어서의 재세이화(在世理化)의 사상은 유교보다는 훨씬 진보적이다, 단군신화에 있어서는 국가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결코 권력을 내세우지는 않았다.환웅(桓雄)이 인간을 출생시키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일방적인 권력적 강제(强制)를 위주로 한 독재적 방법이 아니라, 설득과 동의를 위주로 한 민주 방법이다. 또 그렇다고 무위지화(無爲之化)만을 바라는 덕화주의(德化主義)도 아니다, 덕화주의는 이상적인 정치 방법이기는 하지만, 막연하고 실효성(實效性)이 적다.
공자(孔子)가 덕치주의(德治主義)를 표방했지만, 실제로 중국 역사상에 있어서 덕치만으로정치를  한 예는 드물다. 근자에 중국에서 진시황(秦始皇)이 재평가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공자(孔子)의 덕치주의의 무력(無力)함에 대한 반성과 진시황의 법치주의 실효성에 대한 재인식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덕치(德治)냐, 법치(法治)냐 하는 것은 오랫동안 문제되어 왔지만, 단군에 있어서는 덕치도 아닌 이치(理治)를 내세웠다. 
재세이화(在世理化)라고 했는데, 천하를 통치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시 한 것이 이치(理治)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치(理治)라는 것은 인간에 있어서는 이성(理性)이요,자연에 있어서는 법칙(法則)이요, 사회에 있어서는 규범(規範)이다. 천지 대자연의 자연법칙과 인간의 이성과 사회의 규범에 맞도록 정치하자는 것이 이치주의(理治主義)이므로, 이것은 가장 과학적이고 가장 진보적(進步的)인 사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단군에 있어서 홍익사상(弘益思想)의 구현 방법(具現方法)도 결코 권력이나 무위(無爲)에 임한 것이 아니고, 이화(理化)에 의한 것이다. 단군신화의 이상이 유교적이면서도 유교를 넘어섰고, 도교적 이면서도 도교를 넘어섰고, 불교적 이면서도 불교를 넘어서서, 결국 유교, 불교, 도교를 다 포함하면서 그 이상의 고차원적(高次元的)인 이상을 지향하고 있다 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이다.
신라의 풍류도(風流道)도 이와 비슷하다. 유교, 불교, 도교를 다 포함하면서도 그것의
종합한 것에 그치지 않고, 좀더 높은 차원에서 그것들을 다 살릴 수 있는 별개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가장 전형적인 신라인(新羅人)인 최치원이라는 인물에서 풍류도의 모습을 볼수가 있다. 최치원은 두말할 것도 없이 유학자(儒學者)다. 
그는 신라인으로 설총(薛聰)과 같이 유교의 최고 전당(最高殿堂)인 문묘(文廟)에 배형(配享)된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그는 또 불교의 대가(大家)다. 신라 때의 고승(高僧)들의 비문(碑文)을 많이 썼고, 하동 쌍계사,합천 해인사 등 절에 많이 출입을 했다. 
동시에 최치원은 도교(道敎)의 신자다. 
그는 유가(儒家)처럼 집에서 와석종신(臥席終身)하지도 않았고, 불가(佛家)처럼 절에서 열반(涅槃)하지도 않았고, 표연(漂然)히 산중(山中)으로 들어가서 사라지고 말아서, 신선(神仙)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유교가 불교나 도교에 자유로 출입하면서 그 어느 것에서도 만족을 얻었으며, 결코 갈등(葛藤)을 느낀 흔적이 없다. 그는 그가 지은 난랑비(鸞郞碑)의 서문(序文)처럼유교, 불교, 도교를  다 포함한 풍류도(風流道)에 살다가 간 전형적인 신라인이었다.

우리는 그가 오랫동안 당(唐)나라에 유학하고 그곳에서 상당한 영화를 누리다가,귀국한 점에 유의(留意)할 필요가 있다. 당(唐)나라는 그 당시의 가장 진보된 문화국가(文化國家)이요, 유교나 불교나 도교의 총본산지(總本産地)이다.그가 그곳에서 신라에 돌아와서 신라(新羅) 가운데서 풍류도(風流道)라는 것을 높이 평가한 것을 보면, 풍류도는 편협(偏狹)한 것이 아니고, 보편적(普偏的)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오늘날 우리 한국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아쉬운 것이 바로 보편성이요, 조화성이요, 관용성이다. 
풍류도에 나타난 위대한 포용성은 바로 단군사상 나타난 홍익이념(弘益理念)의 신라적(新羅的) 발전 형태다.

(3).  3 · 1 정신과 통일사상
풍류도가 그 당시의 동방사상을 모두 집대성(集大成)한 것 같이,기미년(己未年)의 3 · 1 독립선언서는 오늘날의 세계사상을 모두 집대성한 것이다. 3 · 1 독립선언서에 나타난 3 · 1 정신은 종교적으로는 천도교, 기독교,불교의 조화요, 사상적으로는 자유주의(自由主義), 평등주의(平等主義),평화주의(平和主義),의 종합이다.
3 · 1 독립선언서에는 민족을 대표하는 33명의 서명(署名)이 있는데,그들은 민족대표인 동시에 천도교와 기독교와 불교의 대표이다. 대체로 종교라는 것은 어느 절대자(絶對者)에 대한 신앙을 고집하는 것이므로, 절대자를 달리하는 타종교(他宗敎)와의 융합(融合)이 어렵고 또 같은 종교안에 있어서도 교파에 따라서 교리(敎理)가 달라지면, 의견이 잘 안맞는 것이 보통인데, 신앙을 달리하는 각 종교가 3 · 1 운동 때처럼 혼연일치(混然一致)된 공동 행동을 한 것은 세계에 드믄 일이다. 
이것은 한국인에게는 신앙이 다른 종교까지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어떤 원동력(原動力)이 있어서 그렇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3.1 사상이요, 풍류사상(風流思想)이요, 홍익사상(弘益思想)이다.오늘날 자유와 평등은 온 인류가 갈망하는 사회정의(社會正義)의 이념이다.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데 중점을 둔 것은 민주주의요, 사회의 평등을 표방하는 것은 공산주의다. 그런데 자유와 평등은 서로가 공존(共存)할 수가 없다. 
즉 자유를 누리려면 부자유(不自由)의 결과가 온다.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려면, 국가권력(國家權力)을 최대한으로 약화(弱化)시켜야 하지만, 사회의 평등을 유지하려면, 국가적 통제(國家的統制)를 최대한으로 강화하여 인간의 자유를 제약(制約)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대혁명이 자유, 평등, 박애의 표어를 내건 이래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이 공존(共存)할 수 있는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자유와 평등이 이율배반(二律背反)이라는 것을 깨달게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세계가 민주진영(民主陣營)과 공산진영(共産陣營)으로 크게 갈라짐에 따라 서로가 적대관계(敵對関係)에 서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우리 한국은 38선으로 말미암아 남한(南韓)은 민주진영에, 북한(北韓)은 공산진영에 속하게 되어, 분단(分斷)의 비극을 겪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남북통일이라는 이념을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에 관해서 크게 진통을 겪고 있다.
우리 남한이 민주주의를 그대로 북한에게 강요할 수도 없고, 또 북한의 공산주의를 우리 남한에게 강요할 수도 없다. 우리 남북한의 통일이념(統一理念)을 구상하는데 있어 남한의 민주주의와 북한의 공산주의를 종합하는 새로운 이념(理念)을 찾고자 여러번 시도(試圖)해 보았으나, 양쪽의 사상을 중화(中和)시킬만한 새로운 사상은 아직 발견 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종합지양(綜合止揚)하고자 하는 노력은 비단 한국민족만의 염원일뿐 아니라, 오늘날 전인류(全人類)의 공동과제이지만,그것이 결코 용이(容易)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까지 체험해 왔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적(理念的) 종합이 어렵다면, 우리 남북한의 통일이념도 구상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요, 남북한의 통일이념의 구상이 어렵다면, 결국 남북통일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된다. 만일에 결론이 이렇게 밖에 날 수 없다면, 우리는 절망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비관할 필요가 없다.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그 어느 한쪽을 강요할 수도 없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종합할 수 없다고 하드라도, 우리는 또 하나의 길을 알고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들어오기 이전의 우리 민족의 주체적 사상(主體的思想 )으로 환원(還元)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이념과 제도는 원래 서방(西方)에서 발달한 것으로,
8 · 15를 기하여 우리 민족에게 수입된 것이요, 또 우리가 공산주의라고 부르는 이념과
제도도 원래 중방(中方)인 소련에서 발달한 것으로, 8 · 15를 기해서 우리 민족에게 수입된 것이다. 
8 · 15 이전에 있어서 우리 민족 사이에 민주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한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일제 식민지 하에서 자유스러운 연구를 할 수 없었고, 더군다나 정치적으로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던 처지에서, 민주주의나 공산주의를 시험해 볼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므로 해방후 불과 4반세기의 경험밖에 갖지 못한 우리 남북한이 그것도 자의적이라기보다는 타의적(他意的)으로 주어진 이념(理念)과 체제(體制)를 그대로 상대방에게 강요한다는 것은, 좀 무리(無理)라 아니 할 수 없다.남북통일의 이념을 남북한의 오늘의 이념에서 구하기가 어렵다면, 우리는 남북한의 이념이 분열(分裂)되기 이전의 한국민족의 주체적사상에서 구해야겠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3 · 1정신에 찾아 보는 것이 순서이다.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에는 남한 동포나 북한 동포가 모두 3 · 1정신으로 단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3 · 1 독립선언서에는 오늘날 남한에서 표방하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염원(念願)과 북한에서 표방하는 사회의 평등에 대한 염원이 모두 절절(切切)하게 표현되어 있어, 우리가 3 · 1 정신으로만 돌아간다면, 민주주의나 공산주의의 이념(理念)을 다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날 도저히 공존(共存)할 수 없다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다같이 강조한 것이 3 · 1 정신인데,그것을 공존시키는 기반(基盤)으로 평화의 이념(理念)을 내세우고 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정신인가, 신라시대에 불교와 고유신앙(固有信仰)이 갈등(葛藤)을 일으켰을 때, 풍류도(風流道)라는것이 불교도 살리고 고유신앙도 살린 것처럼, 오늘날 민주주의도 살리고 공산주의가 서로 싸우는데,3 · 1 정신이라는 것이 있어서 민주주의도 살리고 공산주의도 살리게 해 준다면, 그 얼마나 다행한 일이까! 원래 극단적인 자유와 극단적인 평등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도 거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거지는 아무런 사회적 제약도 받지 않는 최대의 자유인(自由人)이다. 

아무리 자유가 좋다고 해도 거지가 되기를 원치 않는 것은 거지의 신세로서는 행복된 생활을 영위(營爲)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평등을 갈망(渴望)하는 사람도 죄수(罪囚)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죄수들은 기거동작(起居動作)과 의식주(衣食住)의 생활에 있어서 하등의 차별이 없는 최대의 평등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평등이 좋다고 해도 죄수가 되기를 원치 않는 것은, 죄수의 신세로서는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말하자면 평등의 뒷받침이 없는 자유는 「아사(餓死)의 자유」요. 
자유의 뒷받침이 없는 평등(平等)은「옥중(獄中)의 평등」이다. 자유스럽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요, 평등스럽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다. 자유스럽고 평등스러운 곳에 행복이 있는데, 이와 같이 자유와 평등이 가장 잘 조화된 경지(境地)를 우리는 평화라고 부른다. 이 평화주의는 곧 홍익인간(弘益人間)사상이요,풍류도(風流道)요, 3 · 1 정신이다.
인간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늘 같은 혈통(血統), 같은 문화, 같은 운명(運命)으로 맺어진 민족의 역사 속에서 산다. 각 민족은 각각 독특한 생활 양식과 문화 형태를 가지는데, 그 독특한 생활과 문화 속에서 인간들은 평화를 누리고 행복을 맛보면, 자유와 평등을 가진다.만약에 어느 민족이 그 고유한 생활 양식과 문화 형태를 말살 당한다면, 그것은 개인 생활에 있어서나 집단적(集團的) 생활에 있어서나 불행을 면치 못하고, 그 불행은 큰 분쟁을 유발(誘發)하는
요인이 된다. 우리 3 · 1 독립선언서는 민족이 평화를 유지하는 기반(基盤)이요, 평화 속에서 자유와 평등이 조화된다는 것을 밝혔다.  우리들은 자유니 평등이니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기 전에 자유와 평등이 공존할 수 있는 모태(母胎)를 찾아야 되는데, 그것이 바로 민족이라는 원점(原点)이다.
민족은 바로 개인과 집단이 분열하기 전의 원점(原点)이요, 평화는 바로 자유와 평등이 분열하기 전의 원점(原点)이다. 우리 3 · 1독립선언서는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모태(母胎)인 평화주의로 돌아가는 것이, 인류의 행복의 근원(根源)이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배후(背後)를 이루는 민족주의 돌아가는 것이, 세계의 진운(進運)이라는 것을 밝혔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통일의 이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다 포함하는 민족주의요, 평화주의로 돌아가면 된다. 우리 한국의 민족적 이상은 단군이념(檀君理念)에서도 풍류도(風流道)에서도 3 · 1 정신에서도 모두 평화주의로 일관(一貫)되어 있다.
그 동안 남한이나 북한에 어떠한 이념과 체제가 있었다 하드라도, 우리는 결국 한국인이므로 한국사상(韓國思想)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니, 이제 민족적 자각(自覺)이 생긴다면, 남북한에 걸친 새로운 실학사상(實學思想)이 형성(形成)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민족적 주체성을 바탕으로 한국주의(韓國主義)에 의한 남북통일이 가능하게되고, 나아가서 전인류가 오늘날 가장 고민하고 있는 숙제(宿題)를 풀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이러한 내용이 우리의 정통사상의 본류로 이해 할수 있다.
이분들에 의해 중국식 유교가 아닌 우리식의 유교가 반영되어 이것이 조선 중기 까지 적용되었다.
예를 들면
①.남편과 아내가 동등하게 존대말 
②.재산상속에서 남녀자녀에게가 1:1로 평등 
③.장가를 가기도하고,시집을 가기도해서 대릴사위제도의 보편화
④.제사 모시는 것을 아들과 딸이 돌아가면서 모시는것등이다.
이는 동방 18현이 모두 조선 중기이전 까지 몰려있는 것을 봐도 그렇다.이점이 중국 유교통치 이념과도 확연히 다른 것이다.그러면 조선 중기 이후를 보면,임진왜란과 병자 호란을 거쳐 우리 조선은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 하였다.그리고 조선성리학이 종주국인 명나라가 망하고 난후 이를 추종하면서 중국식 유학으로 복귀하였다. 
예를 들면
①.남존여비 사상의 대두 
②.재산상속에서 장자독식의 불평등 
③.장가를 가기만 해서 씨족사회의 폐쇄적 마을공동체
④.제사 모시는 것을 큰아들로 한정등 이다.이것이 갑신정변과 동학 농민 운동에서 주장한 신분제 폐지 요구는 갑오개혁에 이르러 상당 부분 수용되었다. 갑신정변에서는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리를 제정하고 능력에 따라 관리를 등용할 것을 내세우고, 동학 농민 운동에서는 노비 문서는 불태워 버리고, 칠반천인(조선 시대에 구별하던 7가지 천한 사람)의 대우를 개선하고, 백정이 쓰는 팰랑갓은 벗겨 버릴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요구 사항이 갑오개혁에 이르러 단행되어 문벌 제도와 반상 차별 등의 신분제가 폐지되었다. 또한 죄인 연좌법 폐지, 조혼 금지 및 과부 재가 허용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이들 조치는 동학 농민 운동에서 제기된 요구와 대부분 일치되는 것들이었다. 이에 따라 수백 년간 지속되어온 봉건적 관습이 공식적으로 완전히 폐기되었다.이러한 부조리는 외래사상의 맹목적인 전통사상의 1차 수난시기로 본다.
곧이어 
일제 병탐시대를 거처 해방, 좌우대결과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의 갈등,맹목적인 기독교 사상,냉전시대를 거처 일방적인 미국우방에 대한 의존도가 일본잔재의 친일세력의 청산 없이 박근혜 정부의 종말까지가 전통사상의 2차 수난기로 본다.
여기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 분별한 외래 사상과 의존성,힘이 약한 국방과 안보로 인해 제국주의적 능욕과 참탈과 침탈이 명.청국에 대한 수난시기와 일.미국에 대한 수난시기에 일어난 결과이다.

이것이 남긴 것이 고유한 가치를 하대하거나 멸시하면서, 힘 있는자에 사상적 의존성과 힘에 기대여 비굴하고 비루한 인간으로 살아올 수밖에 없고,우리에게 디자인된 전통적 시대라고 말하면 억척일까? 정통적 시기에 최대의 병폐는 반상의 제도로 노예(천민)신분제의 분화가 없었다는 점이다.나는 그래서 최제우 선생의 동학사상에서 신분제 폐지 주장과 예수교사상의 사랑 실천 사상은 전통수난기에 양대 조류라는 점에 함께 크게 공감한다. 
우리들의 생각의 내면에도 우리는 정통사상과 전통수난사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고 본다. 우리들 주변에 부모 형제 친구들도 그러할것이며,현재 19대 대통령 후보들중에서도 이런 생각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 시대에 국민은 태어나면서 주어지는것이지만,시민의식은 권리와 의무를 바탕으로 책임의식을 가진사람을 말한다. 참여하는 시민으로 주권을 생사는 것이 우리 고래의 정통사상에 부합하는 정신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는 다시 우리 고유한 정통사상을 되 돌려 받아야 한다.이것이 오늘날에 세계 시민 사상이다. “지구공동체의 일원이 됨에 따라 생기는 권리, 책임감, 의무이다. ‘시민’이라는 용어는 사람과 도시, 주 또는 나라와 그들의 일할, 살 그리고 특정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참여할 권리와 관련 있다. 자연사상은 천신사상이며, 천교원리강론의 궁극적인 목표는 생명체들의 행복(生生之生)이다.샤마니즘의 무교로부터 불교,유교,예수교,이슬람교,힌두교와 민족종교들,동학종교는 우리의 정통사상을 수천년동안 형성하였다.앞에서 말한 전통사회의 1,2차 수난기를 통하여,우리들의 생활문화는 왜곡되었다.이를 일소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궁핍으로 부터해방하고,과거 인습으로부터 해방하며,자기의 잘못된 생활 습관으로부터 해방하는 길이다. 우리 사회에 자리잡고 있는 가짜 양반들과 일제잔재 청산을 골라내는 기준이 이것이다.
이제는 권력 주체를 바꿔야 한다. 즉 시민사회의 시작이다.
또 시민이 ‘세계적’이라는 용어와 결합될 때, 세계 시민은 일반적으로 특정 나라나 장소의 시민으로서의 그들의 정체성을 넘어 “지구 공동체”의 시민으로서의 그들의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 생각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지리적이나 정치적인 경계에서 벗어나게 한다. 또 세계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이나 권리는 지리적이나 정치적인 경계에서 초월한 인간다움에서 나온다. 

이것은 그들의 국가성이나 다른, 좀 더 지역적인 정체성을 비난하거나 포기하는 그런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계시민의식(영어: global citizenship, world citizenship)은 대표적으로 특정 국가의 시민으로서 그들의 정체성 위에 글로벌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위치시키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한 사람의 지리적 또는 정치적 국경을 초월한 정체성 그리고 지구의 인간 커뮤니티는 상호의존적이고 전체적이다.인류는 본질적으로 하나이다. 이 용어는 무교육적이고 정치적 철학으로 쓰여졌으며 세계 시민 운동과 세계화(Mundialization) 운동과 같은 사회적 운동에 널리 쓰여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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