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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는 동서 문명의 뿌리 . 인도-유럽어의 기원 산스크리트
Sanskrit Language Cognate Indo-European Languages

작성자 조혁연
작성일 2013-01-21 (월)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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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복천암~정이품송 '한글루트' 였나
 


충청 백두대간 7백리를 가다
 

조혁연 기자 chohy@jbnews.com

 
(16) 속리산 복천암
속리산 복천암에서 동쪽으로 난 샛길을 따라 500m 정도 발걸음을 옮기면 신미(信眉)대사 부도탑을 만날 수 있다. 보물 제 1416호로, 공 모양의 탑신이 부드러운 곡선과 함께 안정감있게 흐른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부도탑의 주인공인 신미대사(1403~1486ㆍ속세고향 충북 영동)가 근래들어 세인들의 관심을 다시 끌고 있다. 세종의 왕사였던 신미대사가 한글 창제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설은 종종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올 상반기 한국세종한림원 총재 강상원 박사가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은 집현원학사 혜각존자 신미대사’라는 책을 내면서 이 설이 다시 세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 지금까지의 설은

한글 창제와 관련, 많은 사람들이 ‘세종대왕이 명령을 했고, 성삼문 등 집현전 학자들이 이의 실무작업을 맡았다’ 정도로 알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우리 입 발음기관을 본떴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일부 국어학자들은 ‘세종실록 계해년 그믐조’에 나타나는 ‘是月上親製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문장을 들어 이에 회의감을 나타내고 있다. 직역하면 ‘이달에 임금이 몸소 언문(諺文)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는 古篆을 모방하였다’ 정도가 된다.

이중 핵심어인 ‘倣古篆’은 ‘옛 篆字를 모방했다’는 뜻으로, 정인지가 지은 ‘훈민정음 해례’에도 이 문장이 나오고 있다. (象形而倣古篆ㆍ‘옛 篆字를 모방해 글자상형을 삼았다’)

이 문장 하나 때문에 ‘발음기관을 본떴다’라는 설은 전통한옥 창문도형, 단군시대 가림토문자, 일본 신대문자, 범어(산스크리트어), 몽고어, 고려 각필 모방설 등의 도전을 받고 있다.

◆ 어느 설이 가장 유력한가

발음기관설 외에 현재 가장 유력시되는 설은 이른바 범자(梵字ㆍ산스크리트어) 모방설이다.

조선초기 유학자인 성현(1439~1504)은 그의 저서 ‘용재총화’에서 ‘基字體依梵字爲之’라고 밝히고 있다. 직역하면 ‘그 글 자체는 범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정도로, ‘용재총화’는 훈민정음 반포 30년후에 쓰여진 책이다.

이수광도 그의 저서 지봉유설에서 ‘우리나라 언서(諺書)는 글자 모양이 전적으로 범자를 본떴다’(我國諺書字樣全倣梵字)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상당수 학자들은 앞서 언급된 ‘篆字’를 ‘梵磁’의 한자식 표현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설은 약점을 지니고 있다. 세종대왕이 범자를 모방해 한글을 창제했을 경우 그 중간에 범자를 능통하게 사용하는 스님이 존재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부분이 규명되지 않았다. 이의 규명작업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현 복천암 선원장 월성(법랍 50) 스님이다.

◆ 최소 7개 증거있다

30년넘게 이 부분을 연구하고 있는 월성스님은 “조선초기 속리산 복천암에 거주하던 신미대사가 세종을 부름을 받아 최소 7년간 복천암~한양을 오가며 한글 창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고 단언했다.

월성 스님은 그 근거로 ▶신미대사가 범어에 능통했던 점 ▶유학 성향이 강했던 세종이 이례적으로 복천암에 불상을 조성해 주고 시주를 한 점 ▶세종이 ‘선교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禪敎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碍 慧覺尊者)라는 긴 법호를 내린 점 등을 거론했다.

이밖에 ▶수양대군 세조가 복천암을 손수 찾았던 점 ▶유학자들이 당시는 물론 세종이 죽자마자 부녀자글, 통시글(화장실글) 등의 말로 훈민정음을 비난하고 험담한 점 ▶신미대사의 본관인 영산김씨 족보에 신미대사가 집현전 학사로 언급된 점 ▶한글 창제후 실험적으로 지은 곡과 문장이 유교가 아닌 불교내용을 담고 있는 점 등을 거론했다.

◆ 구체적인 근거는 있나

월성스님은 첫번째에 대해 유학자 김수온(1410~1481)이 지은 ‘복천보장’을 인용, “신미대사는 불경에 통달했으나 한자에 오역을 많음을 느끼고 이른바 원어, 즉 범어를 공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지난 1975년 서울 인사동에서 발견된 신미대사 ‘범어진언’(사진참조)에 그대로 들어나 있다”고 밝혔다.

‘慧覺尊者’(혜각존자)라는 법호에 대해서는 “세종이 스님에게 극존칭 법호를 내린 것은 신미대사가 유일하다”며 “그 앞에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이롭게 했다는 뜻인 ‘祐國利世 글귀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한글 창제와 관련, 세종이 아닌 수양대군 세조가 등장하는 것은 다소 이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월성스님은 세조의 복천암 방문도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복천보장’을 다시 인용, “세종은 유생들의 극심한 반대를 예상하고 신미대사, 수양대군, 안평대군 등 5인에게만 한글창제 작업을 극비리에 명령한다”며 “이후 세조는 왕위찬탈에 대한 흉금을 말하기 위해 옛정이 있는 신미대사를 찾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조는 온양과 초정에서의 목욕을 핑계삼았지만 속리산 복천암 방문이 실제 목적이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이때 생긴 것이 이른바 ‘정이품송 전설’이라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월성스님은 이밖에 “조선은 유교국가라 한글창제 실험용 책도 당연히 유교적인 내용이 됐어야 했다”며 “그러나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은 불교적인 내용을 담은 곡과 문장으로, 이것 역시 신미대사가 한글창제를 주도했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월성스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창제에 신미대사 이름이 빠져있는 것에 대해 “세종 사후 유생들은 신미대사와 불교에 관련된 문구를 모조리 삭제했음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며 “다만 영산김씨 족보에 ‘守省以集賢院學士得寵於世宗’의 문구가 나온다”고 밝혔다. 직역하면 ‘守省(신미대사 속명)은 집현원 학사를 지냈고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정도가 된다.

◆ 복천암~정이품송은 한글루트(?)

현재 신미대사 한글창제 주도설은 정설화된 위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학자들은 그 개연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이럴 경우 속리산 복천암-정이품송 그리고 세조가 잠시 머물렀다는 말티고개 초입의 ‘대궐터’(장재리)는 이른바 ‘한글 루트’가 된다.

지역민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백두대간 속리산에는 이런 사연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숲속에 외롭게 서있는 신미대사 부도탑은 후손된 우리들에게 역사를 바로 잡아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보은군은 이를 고증하면 엄청난 무형의 자산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자료제공ㆍ도움말: 복천암 월성스님, 충북도청 김길상(영산김씨 후손) 계약담당
◇한글기원설 또 어떤 것이 있나◇
한글 창제와 관련, 현재 정설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것은 ‘우리 입 발음기관을 본떴다’라는 설이다. 그러나 세종실록 등 여러 사료에 ‘倣古篆’(옛 전자를 모방했다)이라는 표현이 보이면서 무려 20여개의 또 다른 기원설이 등장해 있다.

이중 가장 논란을 빚고 있는 설이 일본 신대문자, 고조선 가림토문자 모방설, 고려 각필부호 유래설이다. 일본학계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는 신대(神代) 문자는 그 모양이 한글과 비슷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문자는 일본 사찰을 중심으로 조선통신사 왕래이후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자들이 “문자 열등의식을 느낀 일본 일부 계층이 한글을 모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수용되지 않고 있다.

고조선 가림토는 기서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문자로, 자ㆍ모음 38자가 한글 자ㆍ모음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위작(僞作)된 책이라는 견해가 매우 우세하다. 한 예로 환단고기에는 ‘경제’(經濟)라는 표현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19세기 이후에 등장한 단어로, 그 이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일제시대 때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누군가 위작한 책으로 보고 있다.

고려 갈필부호 유래설은 지난 2001년 서울대 언어학과 이승재 교수가 처음 제기했다. 당시 이 교수는 “고려불경을 조사한 결과, 무려 17개의 각필이 훈민정음 모양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설은 ▶고려~조선초기 승려들이 불경한자를 쉽게 읽기 위해 각필을 사용했고 ▶그 각필은 범자(梵字)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추론을 낳고 있다. 이 설은 훈민정음 범자 모방설과 선이 닿아 있거나 근친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충청 백두대간 이런 꽃이 핀다

◆ 왜솜다리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백두대간 고산지대에서 볼 수 있다. 높이 20㎝ 안팎까지 자라며 잎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잎자루가 없으며 양면에 솜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잿빛을 띤 흰색 털이 빽빽이 나있다. 꽃을 줄기 끝에 둥글게 모여 달린다.


◆ 으아리
미나리아재비과의 덩굴성 여러해살이풀로 산기슭에서 주로 볼 수 있다. 고추나물 혹은 선인초(仙人草)라고도 불리우며 덩굴이 잎자루로 감아 올라가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꽃은 6∼8월에 흰색으로 피고 어린 잎은 식용하고 뿌리는 약재로 쓴다.


◆ 익모초
꿀풀과의 두해살이풀로 높이 1m까지 자란다. 꽃은 7∼8월에 연한 붉은 자주색으로 피며 그리고 마디에 층층으로 달리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맛은 쓰고 맵고 그리고 차가운 성질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부인과 질환 한약재로 만이 사용된다.


자료제공: 백두대간시민보전연대 최상영(011-9841-4387) 사진영상단장
▶취재후기
속리산(俗離山)은 글자 그대로 ‘속세에서 떨어져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이런 문자적인 이미지는 말티고개를 넘을 때까지 그런대로 유지된다. 가파르고 여러차례 구비치는 길이 한번 들어가면 영영 다시 빠져나오지 못하겠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러나 이런 속리산의 이런 이미지는 법주사 초입인 세칭 ‘오리숲’에 이르러서는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우선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솔향기 가득한 송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마치 양복에 갓을 쓴 모습이다.

이밖에 콘크리트 포장도로의 도랑이 너무 깊다. 게다가 뚜껑도 덮혀있지 않다. 따라서 아이와 함께 속리산을 찾은 방문객들은 이들은 단속하느라 여간 신경을 쓰는 모습이 아니다.

흔히 집의 이미지는 대문부터 좌우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른바 ‘첫인상 효과’이다. 이런 의미에서 법주사 오리숲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법주사 사하촌은 지금 최악의 경기침체에 빠져 있다. 국내 수학여행단이 금강산관광으로 몰리면서 더욱 타격을 받고 있다. 법주사가 본래 이미지를 되찾으려면 오리숲 분위기부터 바꿔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입력 : 2005년 07월 10일 15:59:27 / 수정 : 2005년 07월 10일 1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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