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문 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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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는 동서 문명의 뿌리 . 인도-유럽어의 기원 산스크리트
Sanskrit Language Cognate Indo-European Languages

작성자 박민우
작성일 2016-11-20 (일) 21:11
ㆍ조회: 596  
IP: 221.xxx.147
청구원류 다이제스트







  청구원류 다이제스트







 이글은 본인의 저서 '청구원류'를 소개하기 위해 압축하여 쓴 글입니다. 즉석에서 쓴 글이고 수정을 하지 않은 관계로 완성도가 떨어집니다. 하지만 청구원류는 지금까지 아무도 밝히지 못한 상고시대 역사를 세계 최초로 본인이 서술한 것이므로 이 소개글은 개괄적이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연구서는 전무하며 저의 독창성이 뛰어난 작품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본 홈페이지에 일부이지만 여러편 올렸으니 저의 이름으로 검색해서 보시면 됩니다. 

상고시대 역사와 산스크리트의 연관성에 대해 강상원박사님에 조선고어실담어 주석 사전과 동영상 강의를 많이 참조하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만 2천 년 전에는 빙하가 녹기 시작하는 때 였으므로 지구촌은 홍수가 난무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때 동아시아 인류의 중요한 이동 수단은 배였습니다. 특히 중원의 곡창지대는 모두 수로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자연적으로 생긴 강줄기 위로 배를 타고 이동하면서 중국대륙 전체를 다닐 수 있었을 정도 였습니다. 교통 체증이 없었으므로  요즘 고속도로보다  훨씬 편리하고 좋았습니다. 특히  '섬서성'은 그 이름 자체가 협곡이라는 뜻입니다.  즉, 물이 엄청 많이 흘러 계곡이 깍여나간 곳이 너무 많으므로 생겨진 명칭입니다. 그곳에 '서안'이라는 최초의 도읍지가 있었지요. 예나 지금이나 사통팔달지역이 가장 큰 도읍지가 되는 것입니다. 



 서안에 물이 마르고 나서는 황하의 물줄기를 따라 낙양이 큰 도읍지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물줄기를 바탕으로 인구의 이동이 이루어졌으므로 사통팔달지역은 엄청 빠르게 문명화 되었습니다. 천산에서 또는 곤륜에서 배를 타거나 타클라마칸의 숲을 지나서 동쪽으로 오면 딱 한 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곳은 돈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돈황은 마고시대를 살았던 인류들이 동진하여 모여든 곳입니다. 



 여기서 황궁씨족은 양자강을 타고 북쪽으로 갔습니다. 청궁씨족은 그냥 눌러 앉았습니다. 더러는 남쪽 또는 동쪽으로 갔지만 멀리 가지 않아도 풍요하게 살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냥 눌러 앉아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 보다 먼저 2천 년 전에 마고성을 나간 일족들은 중국 대륙 전역의 밀림과 동굴 등지에 퍼져 마치 짐승처럼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었던 때입니다. 산해경에 나오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들을 가리킨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인구가 서역에서 돈황 쪽으로 유입되었으므로 언어는 모두 유사하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청궁씨 일족은 배를 타고 이동하여 대륙 전체에 골고루퍼져 나갔습니다. 황궁씨족은 홍산문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약 9천 년 전입니다. 홍산문명이 약 4천 년 전에 사라지게되는데 이는 그들의 젓줄이던 강이 말라서입니다. 만리장성을 기준으로 이북과 이남이 단층지대여서 갈라진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땅이 심하게 갈라져 지상에 강물과 호수가 말라버렸습니다. 그래서 홍산문명을 산동반도와 발해(청구)로 이동하고 또 서안으로 이동했습니다. 황궁씨족과 청궁씨족의 도킹은 황궁씨족의 엄청난 문명 수준 때문에 싱겁게 끝났습니다. 은나라는 청궁씨족과 황궁씨족의 연합이고 단국조선은 천산의 동쪽 돈황 근처에 있었던 부도(하늘나라)에서 파견한 서자(庶子)의 무리가 황궁씨족을 흡수하여 세운 나라입니다. 이때부터 중원의 북쪽과 몽골지역은 사막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황하유역의 대문구문명은 홍산문명이 그대로 옮겨온 것입니다. 은나라는 홍산문명말기에 하가점문명이 이동해 온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은나라 북쪽에 삼위산이 있었고 그곳에 묘족이 있었습니다. 묘족이란 '마고성사람'이라는 뜻이며 최초의 사람, 정착한 사람, 어머니나라에서 온 사람, 농사를 최초로 시작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게 모두 산스크리트입니다. 즉, 묘족은 돈황에 있었던 부도(하늘나라)에서 단국님금씨가 6만을 이끌고 동북방으로 개척나가고 남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단국님금께서 부도를 떠난 후 유호씨가 부도를 지켰습니다. 유호씨는 단국님금보다 100살이나 많은 부도의 마지막 어르신(巫人)이었습니다. 



 요(堯 )라는 나쁜 임금이 있었습니다. 그는 단국의 제사를 모방하였고 단국의 법제와 평양이라는 도읍지의 명칭까지도 벤치마킹해서 자기가 만든 것으로 하여 임금행세를 하였습니다.  단국까지 모방해서 당(唐)나라를 세웠습니다. 요(堯 )는 유호씨의 둘째아들 순(舜)을 꼬여가지고 자기 일급 신하로 만들었습니다. 이 두 놈이 한 짓은 묘족을 삼위산에서 몰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수십 년 간 묘족을 소탕하니 묘족들은 삼위산을 나와 배를 타고 사천성으로 튀었다가 양자강을 타고 오늘날 복건성, 산동성 광동성 지역까지 이동하여 갔습니다. 기존의 학자들은 묘족이 치우 후손이라고 하니까 무조건 북쪽에서 남하했을 거라고 하는데 그건 연구가 잘못 된 것입니다. 구려라는 말도 묘족이 쓴 것인데 아홉개의 문중을 말합니다. 이들 아홉개의 문중은 순임금이 소탕작전을 펼치니 치우님금 명성을 팔면서 쫓겨다닌 것입니다.  치우는 이들 아홉 개 문중에서 장수 아홉명씩 뽑아 황제하고 싸웠습니다. 그러므로 훗날 묘족은 치우가 자기들 조상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요.순의 소탕작전에 꼼짝없이 죽을 수 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요가 얼마나 나쁜 놈이었으면 아들 단주가 왕위를 포기하고 묘족의 왕이되어 순임금과 싸웠겠습니까? 단주는 아버지의 살인, 출신 성분 차별(사실은 마고성에서 쫓겨난 무리의 후손이므로 복수심)에 맞서 항거하다가 쫓겨나 묘족을 위해 헌신하다 단수에서 죽었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황해의 절반이 육지나 갯뻘이었습니다. 황제와 치우전이 끝나고 공공씨가 청구에서 수리사업(물을 다스리는 관리 복희씨의 후손)을 하고있을 때 전욱이라는 황제의 손자뻘 되는 놈이 공공씨하고 맞짱 붙었는데 치액특환웅께서 구원병을 보내지 않아 허벌나게 깨지지면서 묘족의 무리와 공공씨 군대는 황해를 건너 한반도로 오게된 것입니다. 언어는 그때 북방에서 들어온 범어와 황해를 건너 들어온 범어 계열이 있었습니다. 전라도 경상도로 각 각흩어져 살게된 이유는 문중들이 옮겨갔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이때부터 이질화 되기 시작하는데 한나라가 망하면서 빠르게 변했습니다. 그 원인은 왕래가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 중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넓고 왕조가 너무 많고 그 생명이 짧은 이유도 있었습니다. 당나라 이후 학자들이 단국조선(동이)과 차별화를 하면서 더 뒤틀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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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하기 이후 태고시대 황궁씨 계족 천산주 이동 연구

 

 

 

경로(徑路)
기후(氣候) 
지형(地形) 
지물(地物) 
신속(神俗)
산수(山水)

 

 

 환민족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제일 중요한 원전은 부도지라 할 수 있다. 부도지는 짧은 문장 속에 인류의 창세기를 담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책이다.

 

 第八章

 더구나 성을 떠난 사람들 가운데 전날의 잘못을 뉘우친 사람들이, 성 밖에 이르러, 직접 복본(復本)을 하려고 하니, 이는 복본에 때가 있음을 모르는 까닭이었다. 곧 젖샘을 얻고자 하여, 성곽의 밑을 파해치니, 성터(城址)가 파손되어 샘의 근원이 사방으로 흘러 내렸다. 그러나, 곧 단단한 흙으로 변하여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성 안에 마침내 젖이 마르니 모든 사람들이 동요하여, 풀과 과일을 다투어 취하므로, 혼탁(混濁)이 지극하여, 청정(淸淨)을 보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황궁(黃穹)씨가 모든 사람들 가운데 어른이었으므로, 곧 백모(白茅)를 묶어 마고(麻姑)의 앞에 사죄하여, 오미(五味)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복본할 것을 서약하였다. 물러나와 제족(諸族)에게 고하기를

"오미의 재앙이 꺼꾸로 밀려오니, 이는 성을 나간 사람들이 이도(理道)를 알지 못하고, 다만 혹량(惑量)이 불어 났기 때문이다. 청정(淸淨)은 이미 없어지고, 대성(大城)이 장차 위험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이를 어찌할 것인가"하였다.

  이 때에 천인(天人)들이 분거(分居)하기로 뜻을 정하고 대성을 완전하게 본전하고자 하므로, 황궁씨가 곧 천부(天符)를 신표(信標)로 나누어 주고, 칡을 캐서 식량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사방에 분거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청궁(靑穹)씨는 권속(眷屬)을 이끌고 동쪽 사이의 문을 나가 운해주(雲海洲)로 가고, 백소(白巢)씨는 권속을 이끌고 서쪽 사이의 문을 나가 월식주(月息洲)로 가고, 흑소(黑巢)씨는 권속을 이끌고 남쪽 사이의 문을 나가 성생주(星生洲)로 가고, 황궁씨는 권속을 이끌고 북쪽 사이의 문을 나가 천산주(天山洲)로 가니, 천산주는 매우 춥고, 매우 위험한 땅이었다. 이는 황궁씨가 스스로 떠나 복본(復本)의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맹세였다.


경로(徑路)
기후(氣候) 
지형(地形) 
지물(地物) 
신속(神俗)
산수(山水)

 

 

 성을 떠난 사람들

 

 약 1만 4천 년전, 이들은 아직 초기 단계의 인류이므로 몸이 성하지 않았다. 다리가 굽었거나 몰골이 짐승의 모습처럼 생겨 고립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부도지)

 성을 먼저 떠난 사람들은 천산으로 곤륜산으로 사막으로 나갔으나 결국 돈황에서 만나게 되었다. 이동 도중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태어났고 대규모 집단을 이루어 부족 단위로 이동하였다.(필자 추정)

 이들은 만리나 되는 길을 험준한 산을 타고 이동한 민족이다. 그것은 소수이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러나 돈황에 도착한 이후 많은 가족들이 생겨 이제는 높은 산맥을 타면서 이동하기는 불가능해 졌다. 그러므로 자연적으로 물길을 타고 이동하게 된다. 황하는 천산에서 시작되어 돈황에 이르러서는 곧바로 북쪽으로 꺽어 '오르도스'를 뺑돌아 남하하여 양자강까지 간다. '오르도스'의 북쪽은 내몽골과 접경한 곳으로 물과 수목 그리고 자원이 풍부하였다. 일단의 민족들은 돈황에서 남하하기도 했지만 황하의 물길은 북쪽으로 뻗어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先出城族은 북쪽으로 이동하여 내몽골의 '우란찰포'까지 갔다. 우란찰포에서 다시 황하는 남쪽으로 꺽어지며 흐른다. 그곳은 물과 수목 그리고 사슴, 양, 소, 돼지, 닭 등이 뛰노는 낙원이었다. 낙원을 발견한 이상 더 이상 행군 할 필요가 없던 민족은 정착했고 그곳에서 기장, 조 등을 심고 수확하며 초기 형태의 농업을 시작하고 목축을 하며 살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곳에 옥이 풍부하게 널려져 있었다. 그것은 근처 화산에서 폭발되어 분출된 것으로 오랜 시간 동안 홍수에 떠밀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옥을 캐기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다. 상당히 강한 재질의 경옥이기 때문에 가공하기 어려웠지만 그들은 일상의 무료함을 떨쳐버리고 왕권 강화의 목적으로 식량을 움켜진 부족장이 일을 시키고 녹봉으로 식량을 나누어 주며 전 부족이 옥가공 하는 일에만 매달렸다. 하늘에서 떨어진 텰(鐵 Steel) 운석을 주워 공구로 만들어 사용했다. (추정)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의 거의 90%는 텰(鐵 Steel) 운석이다. 순도 100%에 가까울 정도로 양질의 텰(鐵 Steel)도 많다. 이것을 달구어서 두들기고 물에 담구어 급냉시키면 오늘날 금속 가공에 쓰이는 '바이트'나 초경공구 정도의 강력한 공구를 만들 수 있었다.(현대 과학 이론에 부합하나 증거 부족)

 그들이 우란찰포 지역을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자급자족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굳이 떠나야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곳은 오지이다. 사막에 오아시스처럼 물이 풍부하고 짐승도 많았지만 지역을 벗어나면 끝없는 초원과 밀림 그리고 맹수들이 우글 거리므로 나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옥가공 기술을 점점 발전시켜 옥에 검은색 코팅하는 기술까지 익혔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玉을 통하여 神에 가까이 가려는 행동이 자칫하면 두번째 재앙을 맡게될까 두려워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神에 대한 禮를 표시한 것이다.

 

 옥가공 기술에 대한 요약

 옥을 불에 달구어 가공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대형 옥 가공품도 많은 것을 보면 그 방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옥을 불에 달구어서 달군 부분을 때리면 그 일부분만 떨어진다. 그리고 최고 높은 온도까지 도달한 옥을 초경공구로 긁으면 줄무늬를 새길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은 평생 동안 옥 가공만하던 장인들만 할 수 있는 고도의 방법으로 오늘날 재현하기 어렵다. 이들만의 도시는 초기 국가 형태를 지녔지만  어떻게 보면 오늘날  농업, 목축을 겸한 공업단지 같았다고 할 수 있다. 평생 동안 옥을 가공하는 노하우는 분업화 했을 것이다.

 


 신속(神俗)


 그들의 神은 麻姑 女神일 수도 있고 아니면 부족을 지켜주던 실질적 그들의 조상일 수도 있다. 그들의 몰골을 치료하기 위해 서방에서 파견나온 신선이면 또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들은 천산을 떠나 오면서 너무 고생을 많이하여 풍토병을 얻었거나 아니면 태생부터 꼽추, 난장이 등 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외부 인사를 초빙하여 치료에 힘 솟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학자들은 일방적으로 웅녀나 마고 일 것이라고 지명하는 것은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흑피옥 유물 가운데는 그들의 神에 해당하는 인물상이 딱 한 개 있는데 그 인물상은 현대인 가운데서도 체격이 건장하고 인물이 잘 생긴 스타일로 굳이 누구 닮았는가를 지목하면 영화배우 남궁원氏나 유인촌氏 정도 될 것 같다. 그 神人은 두루마기 같은 옷을 입고 있다. 흑피옥 유물에는 여신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여신상은 흑피옥으로부터 훨씬 오랜 세월이 지난 약 6천 내지 7천년 이나 지난 후에 생긴 것이다. 그 동안 인간 세상의 가치관은 많이 변했을 것이다.

 그밖에 유물을 직접보고 말할 수 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연구한 부분과 중첩 될 것이므로 생략하는 것이 좋다.

 

 


  2차, 3차 등등 줄이어 마고성을 떠난 사람들


 황궁씨가 권속을 나누어 무리들을 출성시키기 전에도 사람들은 떠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리들은 멸종되거나 살아 남았어도 소수 부족 단위로 남아 지금의 동남아 일대와 중국의 오지에서 생활하게 되었을 것으로 본다. 멀쩡한 神의 자식들이 오미의 재앙 이후 태어나는 자식마다 금수의 모양으로 태어나니 이 시기가 3천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후 환인씨(1만 1천 년 전)때에 와서 地氣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第九章

옛날에 먼저 성을 나간 사람들의 자손이 각지(各地)에 잡거(雜居)하여, 그 세력이 자못 강성하였다. 그렇기는 하나 거의가 그 근본을 잃고, 성질이 사나와져서, 새로 온 분거족을 보면, 무리를 지어 추격하여 그들을 해하였다. 분거족이 이미 정주(定注)하니, 바다와 산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내왕이 거의 없었다.

 


  2차, 3차 등등 줄이어 마고성을 떠난 사람들과 후기 황궁씨 일족도 차례로 흑피옥 부족들이 사는 곳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들의 결속력은 너무나 강하여 외부인을 보면 죽이려 달려들었다. 그후에 도착한 이주민들은 하는 수 없이 다른 곳에가서 정착하게 된다. 그들 중 태행산맥을 넘어 간 사람도 있었고 태행산맥 서쪽 아래에서 정착한 사람도 있었다. 아예 베링해를 넘어 아메리카까지 간 사람도 있었다. 後期出城族들의 일부는 요하 일대에 자리잡고 흑피옥부족과 1천년 동안 이웃해서 살다보니 玉가공 기술이 전파되고 서로 무역을 하는 등 제법 왕래가 많았다. 그러나 생긴 모습이 많이 달랐다. 흑피옥부족은 '난장이'들이 모여 사는 나라였고 요하 일대는 그래도 정상인들이 살았다. 요하를 넘고 태행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간 사람들은 멀리 일본까지 갔다. 그리고 청구와 한반도에도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다. 황궁씨의 후예는 천산을 출발하여 태행산맥을 넘고 부상국에 당도하니 장차 이곳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할 길지 였으므로 요녕성 일대에 아사달을 짓고 영주 봉래 방장 지리 한라 백두 등지에서 은거하며 살았다. 사람이 많지 않았던 시대라 신선이되어 산속으로 들어갔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황궁씨의 무리들은 부상국의 좋은 땅에서 풍요하게 살았다. 특히 쌀과 콩, 조, 기장 그리고 해산물, 범피, 호피, 원숭이, 코끼리, 물개가죽, 압록강에서 나는 수암玉 등 많은 교역 물품을 요하 일대에 무역상들에게 공급하였다. 

 당시 환인씨의 나라는 천제울국으로 이전원에 그대로 있으면서 전 세계에 파견사를 보내 다스렸다. 황궁씨 일족들이 청구에 먼저 들어와 발판을 마련하여 후일 지금으로부터 약 6천 5백년 전에 서방 천제울국에서 환웅씨가 무리 3천을 이끌고 부상국으로 오게 된다.

 이른바 서자(庶子)는 神의 아이들을 가리킨다.  서자(庶子)의 올바른 뜻은 시바(Siva) 神이 보낸 사자이다. (아래 논문 '서자(庶子), 神의 아이들' 참조)

           

 1만 2천 년 전 대홍수 시기가 도래 되었다. 그것은 몇백만 년 간 지속되어 오던 빙하기가 갑자기 멈추고 전세계적으로 해빙이 시작된 것이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융기하고 갈라지고 폭우가 쏟아지고 해일이 일고 지구는 총체적 난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1천 년이 지난 후 북방 시베리아 트랩에서 강력한 화산이 폭발했다. 화산폭발은 간헐적으로 일백년 동안 폭발하여 전체 지구의 기온이 올라갔다. 화산이 폭발하여 내뿜은 이산화탄소가 그 원인이다. 지구 온난화는 약 2백년 동안 지속되었다. 홍수에 떠서 밀려온 옥조각들이 지천에 널어지니 흑피옥부족들은 신나게 더 많은 조각품을 만들고 요하 일대로 보내 식량과 맞 바꾸며 교역과 왕권력을 강화 시키고 아주 부유하게 살았다. 

 그러나 영거드라이아스 기간 동안 흑피옥 부족은 갑자기 멸종했다. 그들은 추위에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가 끝나고 약 2백 년간 지구는 얼어붙었다. 이 기간 동안 요하 일대로 피신한 사람들은 평생을 '난장이' 취급 받으면서 공방에 쳐박혀 옥기 가공만 하다가 죽었다. 결국 적자 생존 법칙에 의하여 멸종했다.

 이제 옥문화는 요하 일대에서 주축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흑피옥 기술이 100% 전수되지 않았으므로 옥을 가공하는 모양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옥이 귀해 졌으므로 조각품의 크기도 줄었다. 검은색 코팅을 할 필요도 없었다. 옥은 전부 수암옥으로 대체 되었다. 구하기 어려운 경옥은 이미 화산재로 덮혀서 땅속 깊은 곳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가끔 곤륜산 쪽에서 오는 무역상들이 곤륜옥을 가지고 와서 교역했다.

 요하 일대도 흑피옥과 마찬가지로 옥공업단지화 되었다. 사람들이 옥에만 집착하고 교역으로 먹고 살았으며 마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처럼 물이 풍부하고 나무도 많으며 초원이 있고 호랑이 곰 늑대 여우 돼지 닭 사슴 등 온난한 곳에 사는 동물과 추운 곳에 사는 동물들 모두가 집합해 있었다. 이곳의 기온은 여름에 30도 이상으로 올라갔고 겨울에는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스텝형 기후였다. 그러나 물이 풍부하여 농업, 목축 등으로 살 수 있었으므로 이곳도 자급자족이 되어 외부세계로의 진출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중원문화는 군사력이 강해지고 진취적으로 성장했지만 군대 자체가 없었던 홍산문화 세력은 점차 퇴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요하문명의 태동은 약 1만 2천 년 전부터 시작되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 확인한 유물의 기록으로는 약 9천 년 전부터 시작 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유물을 연구한 사례는 너무 많으므로 생략한다.

 

 

 

 요하문명의 멸망

 

 요하문명은 곰토템을 가진 문명이었으므로 우리 고조선의 실체를 증명해주었다. 요하문명은 한반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비파형청동검, 옥 귀걸이 고인돌 등 이루 헤아릴 수없이 많다. 요하문명은 부상국에서 많은 수산물과 농산물 그리고 옷감, 범피, 호피, 물개가죽 등을 공급 받았으며 곰과 호랑이 토템 사상을 전파했다. 웅녀와 환웅 등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는 요하문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환웅은 천산에서 삼천의 무리들과 함께 부상국으로 곧장 온 선진 세력이었다. 환웅은 요하문명의 부족들과 융합하여 후손을 일구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배달 환국은 요하에서 발전과 진화를 거듭하며 한반도로 온 것은 아니다. 배달환국은 천산에서 직파한 선진 세력이고 비, 구름, 바람을 거느리고 인간사 360여 가지 일을 펼치는 문화와 문명을 겸비한 초능력자 집단 이었다.

 요하문명에서 최고(最古)로 오래된 유적은 소하서문화(小河西文化, BC7000-BC6500)이다.

 " △소하서문화(기원전 7,000~6,500년) △흥륭와문화(기원전 6,200~5,200년) △사해문화(기원전 5,600~) △부하문화(기원전 5,200~5,000년) △조보구문화(기원전 5,000~4,400년)가 형성되었다. 홍산문화는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데, 전기는 신석기시대(기원전 4,500~3,500년)로 출발해 후기에 석기와 청동기가 혼재된 문화(동석병용시대·기원전 3,500~3,000년)로 발전하였다. 홍산문화 후기에 들어 초기국가단계로 진입한다. " (우실하 교수)
 
 홍산에서 약 400KM 떨어진 곳에 'Dalinur'호수가 있다. 지금 이 호수의 물줄기를 살펴보면 큰 지류만 5개가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홍산 일대에 물을 공급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물이 끓기고 호수만 남아 있다. 물이 끓어진 이유는 사막화가 진행되기 때문이지만 왜 사막화가 촉발되었는 지는 잘 모른다. 그 이유는 지반 붕괴에 있었다. 북경대 교수 리산해의 말에 於하면

 

 

 

 중국지질과학원_이산해.jpg

차인표의 역사탐험 - 잃어버린 문명을 찾아서 《동이족의 요하 문명》

 

 " 홍산문화 시기 후기에 대흥안령산맥이 단층작용으로 끓어졌습니다. 남쪽의 강소성 부분과 북쪽의 심양(요녕성 성도)에서도 역시 단층작용이 일어났습니다. 이 두 지역의 단층작용으로 중국 중원의 평원이 상대적으로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서부는 끓어진 부분으로 인하여 높아졌고 대릉하(大凌河) 유역과 요녕성 서부 즉 홍산문화지역도 상대적으로 높아졌습니다. 이런 지각운동으로 결국 대릉하(大凌河) 골짜기의 물도 강물도 계속 마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물이 마르면 지하수도 감소하게 되고 지하수가 점점 줄어들게 되면 식물도 자라지 못합니다. 식물이 자라지 못하면 황사도 심해집니다. 이런 지각운동 이후에 사람들도 점점 물이 많고 식물도 많은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지요."


 당시 비옥한 땅에서 뛰놀던 동물들은 모두 온난한 초원지대에서 자라던 것들이다. 신수안토기에 그려진 문양은 돼지, 사슴, 새, 곰, 호랑이, 닭(봉황) 등이있는데 이들 중 특히 돼지와 닭은 따뜻한 곳에서 키우는 동물이다. 돼지야 말로 사람과 똑같은 식성을 가진 동물인데 당시 동물들만 보아도 기온이 따뜻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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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가점 하층 유물의 특징 :  곰 이빨 . 턱뼈, 개, 호랑이 유적에서 발견 이것은 사람이 살기가 좋았던 시절에 나오는 것이다.


 하가점 상층 유물의 특징 : 양, 염소가 나온다. 그것은 기후가 척박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홍산. 요하문명은 맥이 끓겼다.

 하가점 상층 . 하층 문화라는 것은 하가점 지역의 땅을 파고 보니 깊은 곳에서 발견된 문화와 얕은 곳에서 발견된 문화가 많은 차이를 보인 것을 말한다. 

하가점 하층 문화는 기원전 (2000년~1500) 시대로 본격적인 청동기시대의 유적이다. 그리고 하가점 상층 문화는 하층 이후의 것인데 이 시기를 끝으로 요하문명이 사라졌다. 그 때는 상나라가 흥했던 시기인데 이미 요녕성 지역에 고조선도 있었다. 


 결론하면 요하문명의 마지막 세대인 하가점 문화는 사막화로 인하여 수원 확보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그 세력들이 대대적으로 상나라나 고조선으로 이주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빗살무늬 토기는 요하지역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인데 빗살무늬보다 발전된 형태의 채도 토기는 상나라에서 발견된다. 채도는 빗살이 없기 때문에 빗살무늬토기 보다 더 구워내기 어렵다는 사실로 보면 빗살무늬토기를 제작하던 사람들이 상나라로 옮겨갔을 가능성을 한번 생각해 본다. 그 이유는 상나라의 옥기모양과 홍산문화의 옥기 모양이 똑 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끝


2015.10.11 


朴 民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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